2026 런던 마라톤 모습. / 'Alvarez Films RUNNING' 유튜브
시계가 1시간 59분 30초를 가리켰다. 마라톤 역사상 인류가 공식 레이스에서 42.195km를 2시간 안에 완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 같은 날 같은 레이스에서 해냈다. 케냐의 사바스티앙 사웨(1:59:30)와 에티오피아의 요미프 케첼차(1:59:41)가 26일(현지시각) 2026 런던 마라톤에서 나란히 서브2를 기록했다.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우간다의 제이콥 키플리모(2:00:28)조차 이전 세계기록(2:00:35)을 뛰어넘었다. 이날 상위 셋은 모두 종전 세계기록보다 빨랐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하루였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신인류가 나타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해당 기록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수준인지를 이해하면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가
서브2, 즉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안에 완주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일인지 숫자로 풀어보면 그 경이로움이 더욱 선명해진다. 사웨의 페이스는 km당 2분 50초, 마일당 4분 34초였다. 42km 넘는 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속도로 달렸다는 뜻이다. 100m를 16초대에 달리는 속도를 2시간 가까이 유지한 것이다. 운동 생리학적으로 보면 사웨의 레이스 내내 산소 소비량은 최대 산소섭취량(VO₂max)의 99% 수준에서 유지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과학자들이 "지속 불가능하다"고 모델링해온 영역에서 거의 2시간을 버텨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웨가 전반 하프 지점을 1시간 29초에 통과한 뒤 후반부에 오히려 페이스를 끌어올렸다는 사실이다. 35km 지점에서 선두 그룹을 벗어난 사웨는 마지막 7km를 km당 평균 2분 48초로 달렸다. 가장 힘든 구간에서 가장 빨랐다.
2위 케첼차의 기록은 더욱 충격적이다. 1:59:41은 마라톤 데뷔전 기록이다. 이전에 1만m 세계기록을 보유했던 트랙 선수가 처음 뛰는 풀마라톤에서 서브2를 기록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직전 세계기록은 2023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케냐의 켈빈 킵툼이 세운 2:00:35였다. 사웨는 그보다 1분 5초나 앞당겼다. 마라톤 세계기록 역사에서 단 한 번의 레이스에서 1분 이상 기록이 단축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슈퍼슈즈가 바꿔놓은 세상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려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이키는 그해 '브레이킹2'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하며 인류가 마라톤 2시간 벽을 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프로젝트가 낳은 부산물이 탄소섬유 플레이트를 내장한 운동화, 이른바 '슈퍼슈즈'였다. 2017년 나이키 줌X 베이퍼플라이 4%가 처음 등장했을 때 과학자들은 기존 운동화 대비 약 4%의 달리기 경제성 향상 효과를 확인했다. 마라톤에서 4%는 약 5분에 해당한다.
2019년 킵초게는 빈에서 비공식 레이스를 통해 인류 최초로 1:59:40.2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41명의 페이서가 교대로 앞을 달리고 선도차량이 함께한 특수 조건의 레이스여서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공식 대회에서 서브2가 탄생하기까지는 그로부터 7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 3' / 아디다스 홈페이지
이번에 사웨와 케첼차가 역사를 쓴 신발은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 3'다. 무게는 97g, 인류 최초의 100g 미만 탄소판 마라톤화다. 신발 한 짝이 바나나 한 개보다 가볍다. 아디다스는 이 신발을 위해 3년간의 연구와 12개 이상의 프로토타입 제작, 케냐와 에티오피아 고지대 훈련 캠프에서의 테스트를 거쳤다. 전작 대비 무게는 30% 줄었고, 앞발 에너지 반환율은 11% 향상됐으며, 달리기 경제성은 1.6% 개선됐다. 레이스 직전인 25일에야 시판에 들어간 이 신발은 출시하자마자 역사를 새로 썼다. 한국 판매가는 59만9000원이다.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 3' / 아디다스 홈페이지
탄소판 슈퍼슈즈의 작동 원리는 명확하다. 신발 중창 안에 내장된 탄소섬유 플레이트가 지면 반발 시 지렛대 역할을 하고, 고탄성 폼이 스프링처럼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되돌려 준다. 발이 지면에 닿는 순간 손실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전진 방향으로의 추진력을 극대화하는 구조다. 나이키가 이 기술을 처음 선보인 이후 아디다스, 퓨마, 뉴발란스, 온, 아식스 등 모든 주요 브랜드가 앞다퉈 탄소판 신발을 출시했고, 마라톤 세계기록은 매년 단축됐다.
인간과 환경이 만들어낸 복합 방정식
그신발만으로 기록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슈퍼슈즈가 제공하는 달리기 경제성 향상 효과는 약 4%다. 사웨가 직전 세계기록을 1분 이상 앞당긴 것, 그리고 케첼차가 마라톤 데뷔전에 서브2를 기록한 것은 신발 이외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첫째는 선수 자체의 생리학적 능력이다. 사웨는 2022년 26세의 나이에 비교적 늦게 국제 도로 경기에 데뷔했고, 2023년 세계 하프마라톤 챔피언에 오른 뒤 풀마라톤으로 전향해 2024년과 2025년 세계 최고 기록을 연이어 작성했다. 그의 트레이너는 "사웨는 아직 전성기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케첼차는 1만m 전 세계기록 보유자로 트랙에서 이미 탁월한 유산소 능력을 증명한 선수였다.
둘째는 고지대 훈련 인프라의 발전이다.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엘리트 선수들은 해발 2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일상적으로 훈련한다. 이 환경에서 훈련하면 혈중 적혈구 수치와 헤모글로빈 농도가 높아져 산소 운반 능력이 향상된다. 해발 2400m의 케냐 이텐을 비롯한 고지대 훈련 기지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훈련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지 수십 년이 지났고, 그 누적 효과가 이 세대의 선수들에게 집약된 것이다.
셋째는 기상 조건이다. 이날 런던의 날씨는 서늘하고 건조했다. 마라톤에서 최적의 기온은 섭씨 10도 안팎으로 알려져 있으며, 습도와 바람도 기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런던 마라톤 코스는 블랙히스에서 더 몰까지 이어지는 포인트 투 포인트 코스로 급격한 오르막이 없고 비교적 빠른 기록이 나오기 좋은 구조다.
사웨 자신은 도핑 의혹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아디다스와 함께 국제육상통합기구(AIU)에 자신에 대한 검사를 강화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케냐 선수 루스 체프느게티치가 약물 관련 3년 징계를 받은 것이 배경이었다. 기록의 순수성을 스스로 증명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나이키가 져도 이긴 이유
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있다. 서브2라는 목표를 처음 공식화한 것은 나이키였다. 그러나 이 역사적 레이스에서 주인공들이 신은 신발은 아디다스였다. 나이키는 2016년 '브레이킹2' 프로젝트를 통해 탄소판 슈퍼슈즈 시대를 열었지만, 정작 서브2의 영광은 경쟁사에게 돌아갔다.
그럼에도 나이키는 이날 자사 인스타그램에 사웨의 기록을 인정하는 글을 올렸다. "시계가 초기화됐다. 결승선은 없다." 오랜 라이벌의 성취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나이키 역시 이 기록이 자사가 10년 전 시작한 슈퍼슈즈 혁명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위 키플리모가 나이키 알파플라이 4 프로토타입을 신고 2:00:28을 기록한 것도 나이키 입장에서는 위안이 됐을 것이다.
이날 여자부에서도 에티오피아의 티그스트 아세파가 2:15:41로 자신이 보유하던 여자 단독 세계기록을 9초 앞당기며 2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아세파 역시 아디다스 에보 3를 착용했다. 남자부 1·2위와 여자부 1위가 모두 같은 신발로 같은 날 세계기록을 작성한 것은 장비 역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국내 커뮤니티에서도 해당 소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신인류가 나오고 있나 보다", "2시간 동안 100m를 16초대에 뛰는 거네" 등의 반응이 나온다. 한 이용자는 "전력으로 달려도 100m 20초가 나오는데"라며 혀를 내둘렀다. 코치의 말대로 사웨가 아직 전성기에 이르지 않았다면 이 놀라운 기록조차 잠정적인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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