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리고〉가 공개 직후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는 가운데, 그 잔혹한 저주의 서막을 단 한 번의 오프닝 시퀀스로 장악한 '도혜령' 역의 배우 김시아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작품 시작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비극을 예고하던 그녀의 얼굴은 낯설지만 왠지 익숙하다. 매 작품 범상치 않은 존재감으로 이야기의 중심축을 담당해온 김시아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는 것은, 어쩌면 이 비극적인 호러 시리즈를 보다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가장 명징한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이번생도 잘 부탁해〉 윤주원 역
판타지 로맨스의 뿌리가 된 18회차 인생
김시아는 반지음(신혜선)의 전생인 18회차 인생, ‘윤주원’으로 분해 방대한 환생 서사의 서문을 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난 유선의 딸이자 초원의 언니였던 그녀는, 어린 문서하와의 짧지만 찬란한 인연을 남기고 비극적인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남긴 짙은 그리움은 19회차 인생인 반지음을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가 가진 감정의 ‘뿌리’이자 모든 인연의 시작점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냈다. 18회차 인생을 살게 있는 아이를 연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녹록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길복순〉 길재영 역
전설적 킬러를 무장해제시키는 아킬레스건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캐릭터 포스터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캐릭터 포스터
전설적인 킬러 길복순(전도연)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는 조직의 보스도, 날 선 칼날도 아닌 딸 ‘길재영’이었다. 김시아는 무뚝뚝하지만 자기주장이 명확한 사춘기 소녀의 예민한 감각을 까칠하면서도 냉랭하게 그려냈다. 최고의 살인 병기를 비로소 ‘평범한 엄마’의 영역으로 유예시키는 그녀의 리얼한 연기는, 작품에 인간적인 온기와 팽팽한 긴장감을 동시에 부여하며 서사의 입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결정적 축이 되었다.
〈고요의 바다〉 루나 & 〈스위트홈〉 서이수
인외(人外)의 영역을 점유한 신비로운 아우라
김시아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독보적인 대목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존재들에 대한 탁월한 장악력이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SF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서 달의 생존자이자 미스터리한 소녀 ‘루나’로 분해 말 인류의 희망과 공포를 동시에 대변했다면, 〈스위트홈〉 시리즈의 ‘서이수’를 통해서는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 선 기묘한 진화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손길로 상대를 변이시키는 압도적인 능력. 김시아가 가진 이 ‘인외적 신비로움’은 극의 리얼리티를 판타지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마법 같은 열쇠가 됐다.
Copyright ⓒ 바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