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제9회 변호사시험이 실시된 8일 오전 응시생들이 고사장인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우라가 달랐다. 모두가 공부의 달인처럼 느껴졌다."
25일 인터넷 커뮤니티 인스티즈에 올라온 한 감독 알바생의 후기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9급 공무원 시험 감독도 경험해봤다는 이 글쓴이는 공시 시험장과의 분위기 차이를 생생하게 전했다. 공시 시험장은 꾸민 사람도 있고 추리닝 차림도 있는 나름 자유로운 분위기였다면, 변호사시험장은 차원이 달랐다고 한다. "비하가 아니라 공부만을 위해 살아온 느낌이었다. '나는 이 날만을 위해 기다렸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잠옷 차림에 머리띠... '편함'이 곧 전략
변호사시험의 외형적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수험생들의 복장이다. 시험이 무려 5일에 걸쳐 진행되다 보니 수험생들은 시험 잘 볼 수 있는 최적의 컨디션을 위해 외모 따위는 깔끔하게 포기한다.
앞머리를 쫙 넘기는 머리띠, 집에서 입는 수면 바지, 오래 입어 몸에 딱 맞는 애착 티셔츠. 이것이 변호사시험장의 표준 유니폼이라고 한다. 글쓴이는 "그냥 시험 잘 볼 수만 있으면 불편한 건 1도 없어야 한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편하게 오는 것 같다"고 했다.
변호사시험 시험장 / 연합뉴스
이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강의실 밖에 붙어있는 수험번호표의 증명사진 때문이다. 정장을 쫙 빼입고 각 잡아 찍은 취업용 사진 속 인물과 수면 바지를 입고 나타난 실물 사이의 간극이 웃음을 자아낸다. 글쓴이는 "증명 사진은 다 정장 쫙 빼입고 찍은 각 잡은 취업 사진이어서 더 간극이 크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변호사시험 화장실 감독 알바로 이화여대에 배정됐던 한 대학생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시험 도중에 화장실에 아무도 안 왔다"며 "시험 시간이 촉박해서 그런지 정말 시험 도중 화장실에 아무도 안 다"고 회고했다. 화장실 요원이었던 그에게는 의도치 않은 '꿀보직'이었던 셈이다.
■ 손목이 나가도록 쓰는 시험.. 서술형의 세계
변호사시험이 이토록 치열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시험 구조 자체가 일반적인 자격시험과 근본부터 다르다.
제14회 변호사시험(2025년 1월)을 직접 응시한 한 로스쿨 3학년생의 후기는 이 시험의 난이도를 실감나게 전해준다. 시험은 공법, 형사법, 민사법, 선택법 네 과목으로 나뉘며, 총 5일에 걸쳐 진행됐다. 하루에도 선택형·사례형·기록형 등 여러 교시가 이어진다.
이 중 사례형과 기록형은 모두 손으로 직접 작성하는 서술형이다. 한 교시에 두세 시간, 길게는 3시간 30분짜리 시험이 이어진다. 감독 알바생이 "거의 논문을 손으로 쓰더라. 손 아프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표현한 이유가 납득된다.
실제 응시자의 후기에서도 체력 소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제2문의 문제 2에서 크게 흔들렸다. 멘붕 상태로 마지막 문제3을 보는데, 2004년을 보고 1995년 이전이라고 잘못 읽고 풀었다. 시험장에선 이 정도로 심신상실자가 된다"는 고백은 5일간의 혹독한 일정이 수험생의 판단력을 어디까지 갉아먹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행히 시험 종료 약 5분 전에 오류를 발견하고 빠르게 수정했다고 한다.
변호사시험 시험장 / 연합뉴스
중간에 하루 휴식일이 있지만, 이날도 쉬는 건 아니다. 선택법 1회독, 민사법 암기장 체크 위주 1독, 최신판례 1독. 이것이 '쉬는 날'의 일정이다. 실제 감독 알바를 경험한 한 대학생은 "법조인력과에 있는 분이 ‘왜 중간에 쉬는지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일하면서 잘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 방송으로 종 안 울리고 '호루라기로 타종
시험 감독 알바 후기의 상당 부분은 도시락 리뷰로 채워진다.
제10회 변호사시험 감독 보조로 중앙대에서 일했던 한 대학생은 "사진도 더 첨부하고 싶지만 법무부에 민형사 고소 먹을 것 같아 생략했다"며 도시락 이야기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그의 후기에 따르면 첫날 도시락 꼬막 반찬이 너무 비려서 눈물이 날 뻔했고, 고기도 너무 짜서 결국 김치와 장조림으로 겨우 버텼다고 한다. 반면 이후 등장한 닭갈비 도시락은 "조미료 맛이 많이 났지만 맛있었다"며 호평을 받았다.
2023년 이화여대에서 감독 알바를 한 또 다른 대학생도 날마다 바뀌는 메인 반찬을 열심히 기록했다. 불고기, 쌈밥·제육볶음, 간장불고기+고추장불고기, 하와이안 스테이크 순으로 이어진 도시락 여정이 그의 후기에서 마치 연재물처럼 등장한다.
변호사시험은 수험생에게만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감독 알바생들에게도 꽤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2021년 1월 5일 한 변호사 시험 응시생이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시험장에서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유행이던 2021년에는 로스쿨이 있는 학교만으로는 시험장이 부족해 중앙대처럼 로스쿨이 없는 학교도 처음으로 시험장으로 활용됐다. 자격요건이 '1~3학년 재학생이면서 법학과 전공 또는 로스쿨 진학 예정이 아닌 자'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앙대에서 감독 보조로 일했던 대학생은 "이공계라 살면서 변호사시험을 볼 일도 없을 것이고, 이런 시험 감독을 해볼 일도 없을 것 같은데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시험의 감독은 방송으로 종을 울리지 않고, 호루라기로 타종한다. 무전기 요원이 본부에서 신호를 받으면 호루라기를 불고, 복도 요원들이 이를 따라 분다. 디지털 시대에 매우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시험의 엄숙함을 지키기 위한 관행으로 유지되고 있다.
감독 보조 알바는 수당도 쏠쏠하다. 2021년 기준으로 작성된 후기에서 알바생은 "아마 40만 원 이상일 것 같다"고 말했다. 2023년 후기에서는 시험 종료 6일 뒤에 수당이 입금됐다고 기록했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