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기운이 가득한 4월 말, 경남 의령을 찾으면 푸른 의령천 위로 솟아오른 강렬한 붉은색 구조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의령 9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의령 구름다리’다. 자굴산에서 내려온 의령천과 벽화산에서 흘러든 남천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이 다리는, 그저 건너가는 통로를 넘어 의령의 역사와 정신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사랑받고 있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면 안개 사이로 붉은 철골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무료인 데다 24시간 열려 있어, 요즈음 나들이객들이 부담 없이 들러 휴식을 취하기에 참 좋다.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 강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곽재우 장군의 붉은 옷을 형상화한 역사적 디자인
의령 구름다리는 설계 단계부터 의령의 자부심인 ‘의병’ 정신을 담아냈다. 다리를 지탱하는 선홍빛 빛깔은 임진왜란 당시 ‘천강홍의장군’이라 불렸던 곽재우 장군이 입었던 붉은 옷에서 따온 것이다. 다리 한가운데 솟아 있는 주탑의 높이는 48m에 달하며, 여기에 새겨진 18개의 하얀 고리는 곽재우 장군과 그를 도왔던 17명의 장수들을 기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상징을 건축물에 녹여낸 덕분에, 다리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호국 의병의 고장인 의령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주탑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간 42개의 굵은 줄은 다리를 튼튼하게 지탱하며 시각적으로도 웅장한 느낌을 준다. 단순히 예쁜 다리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점이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국내 최초의 Y자형 구조와 발 아래 펼쳐지는 아찔함
이 다리의 가장 큰 특징은 세 방향으로 길이 갈라지는 국내 최초의 ‘Y자형’ 사장교라는 점이다. 전체 길이는 258m로, 어느 쪽으로 걷느냐에 따라 의령천과 주변 산세가 보여주는 풍경이 매번 달라지는 즐거움을 준다. 특히 다리 높이가 지면에서 19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교량 중간 바닥이 구멍이 숭숭 뚫린 철망 구조로 되어 있어 발 아래 흐르는 물줄기를 직접 내려다볼 수 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아찔함은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지만,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방문객이라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하지만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의령 시내와 탁 트인 수변 환경의 경치는 그 공포감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답다. 맑은 물빛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광경은 4월의 나들이를 더욱 즐겁게 만든다. 다리 중간중간 마련된 넓은 공간에서 잠시 멈춰 서서 강물을 내려다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400여 개의 LED 빛줄기가 만드는 화려한 밤의 풍경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구름다리는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400여 개의 LED 조명이 다리 곳곳을 밝히며 화려한 야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붉은색 구조물 위로 쏟아지는 조명 빛이 의령천 수면에 그대로 비치며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밤 산책을 즐기는 이들에게 낭만적인 분위기를 전해준다. 물 위에 일렁이는 붉은 빛은 마치 강물 속에도 또 하나의 다리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리 주변으로 조성된 수변공원에는 시원하게 쏟아지는 인공폭포와 분수대, 걷기 편한 나무 데크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다. 밤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설치되었던 낡은 조명 시설을 새롭게 정비하여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고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장점이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가볍게 걷기에 더없이 좋은 밤 산책길이다.
부자의 기운을 담아가는 완벽한 여행 마무리
구름다리를 구경한 뒤에는 주변의 역사 문화 명소들을 함께 둘러보기를 권한다. 다리에서 걸어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의병들의 유물을 전시한 ‘의병박물관’과 곽재우 장군의 사당인 ‘충익사’가 자리하고 있다. 역사 공부와 산책을 동시에 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인기가 높다. 잘 가꾸어진 충익사의 정원을 걷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차를 타고 이동하면 남강의 명물인 ‘솥바위’를 만날 수 있다. 이 바위를 중심으로 주변에서 세 명의 큰 부자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와, 좋은 기운을 얻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구름다리와 공원 산책에 1시간 정도를 쓰고, 주변 명소까지 묶어서 둘러보면 알찬 반나절 여행 일정이 완성된다. 장마가 오기 전, 화창한 이 시기에 의령의 붉은 기상을 직접 마주하러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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