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유재석이 있기 전, 1990년대 방송가에는 또 한 명의 국민 MC가 있었다. SBS ‘도전 1000곡’, EBS ‘퀴즈 천하통일’, CBS FM 라디오까지 종횡무진하며 브라운관을 누비던 방송인이다. 바로 1983년 개그맨으로 데뷔한 정재환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 순간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칠곡할매글꼴'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방송인 정재환 씨가 지난 2021년 경북 칠곡군 금남2리 마을회관에서 글씨체를 만든 할머니가 만든 배추전을 받아 먹고 있다. 칠곡군은 지난 2020년 6월부터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 400명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해 5명의 글씨를 글꼴로 제작했다. / 칠곡군 제공
그의 선택은 뜻밖의 곳으로 향해 있었다. 40대를 앞둔 시점, 그는 화려한 무대가 아닌 대학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2000년, 성균관대학교 인문학부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방송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그는 학업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모든 방송 스케줄을 수업에 맞춰 조정했고, 밤이 깊어질수록 책상 앞에 앉아 전공 서적을 읽고 리포트를 써 내려갔다. 새벽 3~4시까지 이어지는 공부는 일상이었다. 20대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치르며 그는 스스로를 더 몰아붙였다. 암기력에서 밀릴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그만큼 더 오래, 더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 결과 3년 동안 결석은 단 두 번뿐이었다. 그것마저도 갑작스러운 녹화 일정 변경 때문이었다.
정재환이 다시 공부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로 활동하며 우리말 운동을 이어오던 그는, 언어와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그의 공백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돌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그맨 출신 정재환 교수. / 유튜브 '조동아리'
그리고 3년 뒤, 40대에 들어선 그는 그 시간의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정재환은 6학기 만에 130학점을 모두 채우며 조기 졸업했고, 평균 4.32점이라는 높은 성적으로 인문대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2003년 졸업식에서는 총장상을 받았다. 매 학기 받은 성적 장학금을 자신이 만든 한글 동아리 후배들에게 돌려준 일화도 전해진다. 함께 방송 활동을 했던 김용만은, 그가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사실에 깊은 감탄을 보냈다. 정재환은 이에 대해 담담하게 자신의 일상을 이어갔을 뿐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졸업 이후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 근대사를 전공하며 연구를 이어갔다. 일제강점기 국어 말살 정책과, 이에 맞서 한글을 지켜낸 이들의 역사를 탐구하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쌓아 올린 시간은 13년. 그는 53세에 박사 학위를 받으며 학자로서의 길을 완성해 나갔다.
방송에 출연한 정재환 교수. / SBS '세 개의 시선'
정재환 교수 근황. / SBS '세 개의 시선'
현재 그는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강단에 서는 한편, 방송에서도 지식을 나누고 있다. 지난해 6월 SBS ‘세 개의 시선’에 출연해 ‘암(Cancer)’의 어원을 설명하며, 이를 처음 명명한 히포크라테스의 연구와 일화를 풀어냈다. 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환자의 분비물을 직접 확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스튜디오에는 놀라움이 번졌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과거에서도 이어진다. 2003년 수석으로 졸업하던 당시, 그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공자를 떠올렸다. 평생을 학생의 자세로 살아간 스승의 이야기였다.
신입생으로 시작해 40대에 수석 졸업, 그리고 50대에 박사까지. 많은 이들이 ‘늦었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는 새로운 시작을 선택했다. 나이를 이유로 멈추기보다, 배우는 길을 택한 그의 선택들이 지금의 교수 정재환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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