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야구장이다.
출근하는 직장인들. / 연합뉴스
어두운 상영관 안에서 숨죽여 영화를 보던 2030 세대가 이제는 탁 트인 야외 경기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조용히 감상하는 문화보다 다 함께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를 실시간으로 알리는 역동적인 경험에 더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야구장은 더 이상 야구광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가볍게 들러 시간을 보내고 인증샷을 남기는 거대한 놀이터이자 핫플레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과거의 야구장이 승패에 목숨을 거는 거친 응원의 장이었다면 요즈음의 야구장은 여러 즐길 거리가 합쳐진 복합 소비 공간에 가깝다. 야구 경기 관람은 이들이 누리는 수많은 경험 중 하나일 뿐이다. 이곳에서 먹는 독특한 음식과 한정판 인형 그리고 화려한 응원전이 어우러져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들어낸다. 이런 흐름은 수치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야구장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련 시장의 덩치도 눈에 띄게 커졌다.
SNS가 끌어올린 ‘직관’의 매력... 언급량 2배 폭증
야구장 현장을 직접 찾는 수요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무서운 속도로 늘었다. 인공지능 트렌드 조사 전문 기업인 뉴엔AI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KBO 리그와 관련한 온라인 게시글 수는 2023년 6만 9553건에서 2025년 12만 3429건으로 2년 만에 약 2배로 불어났다. 올해 들어 1월과 2월에만 벌써 2만 4019건의 게시물이 쌓이며 뜨거운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6 KBO리그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관중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현상은 관람객의 현장 경험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야구장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거나 구장에서만 파는 특색 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이 짧은 영상이나 사진으로 공유되면서 야구장 방문 자체가 하나의 유행이 됐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직관’ 관련 게시물은 이미 54만 7000개를 넘어섰다. 야구장을 찾은 이들은 경기 결과만큼이나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를 기록하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매체별로 달라지는 야구 콘텐츠 기록 방식
사람들이 야구장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도 매체마다 뚜렷한 색깔을 띤다. 블로그에는 야구장까지 가는 길이나 구장 안의 맛집 지도를 꼼꼼하게 적은 긴 후기가 주로 올라온다. 반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현장의 생동감을 전달하는 영상이나 유니폼을 차려입은 모습을 뽐내는 사진 위주다. 네이버 지식인 같은 질문 창구에는 유니폼 사이즈 고르는 법이나 어느 구역이 사진이 제일 잘 나오는지 묻는 글들이 쏟아진다.
야구장 방문이 경기 관람이라는 틀을 벗어나 준비 단계부터 기록과 공유까지 포함하는 일상의 콘텐츠로 확산했다. 야구장에 가기 위해 어떤 유니폼을 살지 고민하고 응원 도구에 스티커를 붙이는 모든 일이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됐다. 이는 야구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온라인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되며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제 야구장에 간다는 말은 단순히 경기를 본다는 뜻을 넘어 그날의 모든 일상을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야구장 문화를 뒤흔드는 2030 여성 팬의 위력
요즈음 야구장 분위기를 이끄는 주역은 단연 2030 여성 팬들이다. 이들은 야구 규칙을 완벽히 아는 것보다 야구장에서 누리는 모든 경험 자체에 더 큰 무게를 둔다. 중고 거래 플랫폼인 번개장터의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야구 관련 거래에서 2030 여성의 거래량은 전달보다 95퍼센트나 늘었다. 같은 기간 2030 남성 증가율인 37퍼센트를 크게 앞지르는 결과다.
야구장에서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관중들 / 위키트리
여성 구매자 10명 중 6명 이상이 2030 세대라는 점은 젊은 여성들이 야구 굿즈 시장과 관람 문화를 이끄는 주축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아니더라도 야구장 특유의 열기와 먹거리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잠실야구장 근처에서 일하는 택시 기사 이모 씨는 손님 10명 중 6명은 젊은 여성이라며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풍경이 일상이 됐다고 전했다. 이들은 유니폼에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새기고 귀여운 인형 키링을 달아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경기가 없어도 문 여는 야구장... 요가와 러닝의 장소로
야구장 공간을 대하는 구단들의 생각도 크게 바뀌었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야구장은 팬들을 불러모으는 체험 공간으로 쓰인다. 인천을 연고로 하는 SSG랜더스는 구장에서 요가 수업이나 반려견과 함께하는 산책 교육 그리고 치어리딩 교실 등을 운영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야구장을 단순한 경기장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생활 공간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LG트윈스 역시 잠실야구장에서 달리기 수업을 열어 팬들을 설레게 했다. 연간 회원들이 선수들이 실제로 밟는 그라운드 안팎을 포함해 5킬로미터 구간을 직접 달리는 행사였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팬들이 야구장을 찾아 소속감을 느끼게 하려는 전략이다. 야구장은 이제 1년 내내 사람들이 모여들고 즐거움을 찾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관중석에서 치킨을 먹던 팬들이 이제는 그라운드 위에서 요가를 하고 달리기를 하며 야구장이라는 공간을 온몸으로 겪는다.
전국 구장 투어 열풍... 이동하는 젊은 소비자들
특정 구장을 넘어 전국의 야구장을 모두 방문하려는 ‘원정 팬’들도 늘고 있다. 구장마다 파는 음식이 다르고 응원 도구의 디자인이 다르다는 점이 여행의 동기가 된다. 광주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고 대구에서만 파는 한정판 굿즈가 있다는 소문은 젊은 층을 움직이게 한다.
'야구장'을 치면 나오는 다양한 컨텐츠들 / SNS 캡처
기업들도 이런 원정 응원 수요에 맞춰 여러 마케팅을 펼친다. 숙박 할인권을 나눠주거나 지역 유명 맛집과 연계한 행사를 열어 팬들의 이동을 돕는다. 이는 야구라는 종목이 지역 경제를 살리는 소중한 자산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팬들이 이동하며 쓰는 숙박비와 식비 그리고 교통비는 지역 상권에 큰 보탬이 된다. 이제 야구는 스포츠를 넘어 관광 산업의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1조 1121억 원의 경제 효과... 1300만 관중 시대 열리나
프로야구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 결과 프로야구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소비 지출 효과는 약 1조 112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야구를 통해 만들어진 일자리만 해도 9500명을 넘었다. 야구장의 변신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국가 경제에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관중들이 야구장에서 사 먹는 떡볶이 한 그릇과 유니폼 한 벌이 모여 거대한 경제적 흐름을 만든다.
관중 동원 속도도 역대급이다. 올해 KBO 시범경기에는 44만 2470명이 다녀가 작년 기록을 가뿐히 넘겼다. 정규 시즌 관중 수도 역대 가장 빠른 14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하며 기록을 갈아치웠다. 업계에서는 올해 총 관중 수가 1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인구 4명 중 1명은 올해 야구장을 찾는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야구장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대중문화로 완벽히 정착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다음 단계
야구장이 복합 소비 플랫폼으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 관중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생기는 쓰레기 문제나 편의시설 부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또한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으려면 세대별로 특화된 즐길 거리를 꾸준히 만들어내야 한다. 야구라는 종목이 가진 본연의 긴장감과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소비 문화를 조화롭게 섞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구단 관계자들은 야구장이 단순한 경기 시설을 넘어 브랜드의 변화를 보여주는 토대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더 유연하고 넓은 경험을 주는 방향으로 야구장 문화가 흘러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야구가 2030 세대의 놀이 문화와 만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함성과 스마트폰의 셔터 소리는 앞으로도 야구장의 풍경을 계속해서 바꿔나갈 것으로 보인다. 영화관의 고요함 대신 야구장의 열광을 선택한 젊은 세대들이 만드는 새로운 물결이 대한민국 스포츠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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