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클로드·제미나이, 각기 다른 설계 철학
미토스 등장…AI, 안보 변수로 부상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챗GPT(ChatGPT), 클로드(Claude), 제미나이(Gemini), 그록(Grok), 퍼플렉시티(Perplexity), 그리고 미토스(Mythos)까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들은 압도적인 성능 못지않게 독특한 작명으로 세간의 이목을 끈다.
업계에서는 이들의 이름표를 단순한 브랜드명으로 보지 않는다. 각 기업이 그리는 AI의 미래 역할, 통제 방식, 나아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철학이 응축된 '전략 코드'라는 것이다.
기능 설명에 급급했던 초기 단계를 지나서 이제는 인간의 모습을 띠거나 신화 같은 존재를 표방하며 뚜렷한 진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챗GPT vs 클로드'…범용 도구냐, 대화 상대냐
가장 직관적인 대비를 이루는 건 챗GPT와 클로드다.
오픈AI의 챗GPT는 말 그대로 '대화(Chat)'와 기반 기술인 '생성형 사전학습 트랜스포머(GPT)'를 직조해 만든 이름이다.
기술적 뼈대와 쓰임새를 전면에 내세워 대중의 뇌리에 '만능 챗봇 도구'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마트폰 앱 출시에 발맞춰 AI를 누구나 쓰는 일상의 도구로 끌어내리겠다는 오픈AI의 대중화 포석이 짙게 깔려 있다.
반면 앤트로픽의 클로드는 정보이론의 선구자 클로드 섀넌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으로 해석되며, 친근한 인상을 주는 작명이라는 평가도 있다.
기술의 차가운 기계적 속성을 덜어내고 인간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이미지를 덧입히기 위해서다. 설립 초기부터 줄곧 '안전'을 부르짖은 앤트로픽의 기조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국내 한 AI 업체 관계자는 "과거 엔지니어들이 모델 크기나 파라미터 수 등 스펙을 앞세워 이름을 지었다면 이제는 대중의 거부감을 낮추고 기업의 철학을 뇌리에 박는 고도의 브랜딩으로 진화했다"고 진단했다.
◇ '제미나이·퍼플렉시티·그록'…플랫폼 패권과 기술의 상징
구글의 제미나이와 일론 머스크의 그록(xAI)은 노골적으로 자사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라틴어로 '쌍둥이'를 뜻하는 제미나이에는 구글의 양대 AI 산맥이던 구글 브레인과 딥마인드의 화학적 결합이라는 조직 통합의 의미가 담겼다. 아울러 미 항공우주국(NASA)의 달 착륙 전초전이었던 제미나이 프로젝트와도 이름이 같다.
텍스트부터 영상까지 아우르는 멀티모달 역량을 발판 삼아 검색 시장 너머의 플랫폼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구글의 야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신흥 강자로 떠오른 퍼플렉시티는 아예 전문 통계 지표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자연어처리(NLP) 분야에서 모델이 다음 단어 예측 시 얼마나 '헷갈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바로 퍼플렉시티다. 혼란을 줄이고 정확한 답만 짚어내겠다는 일종의 기술적 자신감의 발로다.
머스크의 그록은 SF 문학에서 유래한 단어로 대상을 깊이 이해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만물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향한다는 머스크 특유의 기조가 녹아 있다.
◇ 선 넘은 '미토스'…도구를 넘어선 잠재적 안보 위협
최근 AI 작명에서 가장 섬뜩한 변화는 '초월성'과 '위험성'의 등장이다.
앤트로픽이 파트너용 프론티어 모델로 운용 중인 '클로드 미토스 프리뷰'가 대표적이다. 그리스어로 신화나 서사를 뜻하는 미토스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로고스) 밖의 영역을 의미한다. 이름부터 통제 불가능한 서사를 은유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름값은 곧바로 실력으로 증명됐다.
앤트로픽에 따르면 미토스 프리뷰 버전은 주요 운영체제(OS) 등 수십 년 묵은 방대한 오픈소스 코드를 훑어내,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제로데이(Zero-day) 취약점을 발굴해 냈다.
스스로 해킹 공격 코드까지 짜내며 무기화 가능성마저 입증했다. 인간 최고수 해커들의 영역을 AI가 자율적으로 넘나들기 시작한 셈이다.
인터넷 보안 생태계를 뒤흔들 '해킹 AI'의 등장에 앤트로픽은 당장 발을 뺐다.
'클로드 미토스 프리뷰'는 일반 공개 대신 프로젝트 글래스윙 참여 기관 등에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 도구인가 행위자인가…이름이 가르는 규제의 잣대
AI의 이름표는 결국 규제의 프레임을 결정짓는 잣대가 된다.
'툴'이나 '엔진'으로 명명된 AI가 사고를 칠 경우 책임의 화살은 사용자에게 쏠리기 쉽다.
반면 클로드처럼 인격화된 존재나 미토스 같은 신화적 이름을 달고 나온 모델은 "기업이 대체 어디까지 제어하고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물음을 던진다.
특히 자율 해킹 능력을 과시한 미토스의 등장은 그간의 통상적인 '보안 취약점 신고' 의무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숙제를 안겼다. 과연 어느 수준의 능력을 지닌 AI까지 공공 인터넷망에 풀어놓을 수 있는지, 근본적인 안보 논의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국내 사이버보안 업계 관계자는 "이름에 '초월' 같은 무게감을 둔 모델이 실제 인프라 타격 능력까지 갖췄다는 건 당국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며 "AI를 단순한 보조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잠재적 안보 위협 행위자로 규정하고 통제 가이드라인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짜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름에 숨겨진 뼈대 있는 전략 코드를 읽어내는 것. 이제 단순한 기술 트렌드 파악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생태계의 향방을 가늠하는 첫걸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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