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앱 안 쓰는 배우 이범수에 "저런 사람들 있어"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률 81%에도 은행창구 붐벼
고액 거래·보안 불안·디지털 격차에 은행 방문
"고령층, 불안과 부담 누적되며 대면 거래 선호"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중년남자: "현금 좀 인출할게요. 쓰는 데가 많아서."
은행원: "얼마 정도 인출하세요?"
중년남자: "천 원짜리 오만원어치요. 주차비 내고 이럴 때 써요."
은행원: "계좌이체가 아니라 현금으로 (주차비를) 주세요?"
중년남자: "주차비를 어떻게 이체해요?"
은행원: "주차요원 앞에 계좌번호가 쓰여 있어요."
중년남자: "아니 입금을 하려면 주차장을 벗어나서 ATM기로 가야 하잖아요."
은행원: "아니 어플만 있으면 핸드폰으로 계좌이체가 가능해요." (당황한 목소리)
중년남자: "핸드폰으로 계좌이체를 한다고요? 나만 현금으로 내는 거야?" (진심으로 충격받은 표정)
웃자고 보는 시트콤이 아니다.
영화 '범죄도시', 드라마 '자이언트' 등으로 유명한 배우 이범수(56)가 한 은행 창구에서 은행원과 나눈 대화다.
지난 12일 SBS TV 예능 '미운우리새끼'에서는 통장 재발급을 위해 은행을 방문한 '디지털 문맹' 이범수의 이러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꼬부랑 노인만이 아니다.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률 81% 시대에도 여전히 은행을 찾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 "82년생 중에도 있다"…"불안해서 은행 찾아"
한국은행이 작년 3월 발표한 '2024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1.3%가 "최근 1개월 내 모바일 금융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하나금융연구소 '2025 대한민국 금융소비자 보고서'에서도 금융소비자 10명 중 9명은 모바일 채널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행 영업점 이용률은 여전히 31%를 기록했다.
은행 앱을 쓰지 않는 이범수의 모습에도 "저런 사람들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 12일 커뮤니티 '더쿠'에는 "생각보다 저런 사람 은근 있더라. 인터넷 앱 자체를 신뢰 안 하고 눈앞에서 직원이 움직이는 것만 신뢰하고 ATM기도 못 믿는다", "일반인 중에도 있긴 하더라 놀랍게", "우리 언니가 저래서 뭐 저런 사람 있을 수 있는 거 이해해. 40대인데 계좌이체를 안 하고 남편한테 전화해서 이체해달라고 얘기하더라", "내 지인 82년생인데 저런 사람 있음" 등 댓글들이 이어졌다.
다만, 은행을 발로 찾아가는 대부분의 '젊은 층'은 불안함을 이유로 꼽는다.
대학생 김모(25) 씨는 24일 "지난해 자취방 월세 보증금 1천만원을 송금하기 위해 은행 영업점을 찾았다"며 "편한 건 모바일뱅킹이지만 살면서 처음 보내보는 큰돈이라 불안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모(33) 씨는 "작은 돈 이체는 카카오페이나 토스로 보내도, 통장 정리나 대출 관련 확인은 무조건 은행에 간다"고 밝혔다.
이어 "은행에서 보낸 것처럼 보이는 이벤트 문자를 눌렀다가 의심스러운 사이트로 연결된 일을 겪은 뒤 불안감 때문에 중요한 일에는 대면 거래를 선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주부 이모(50) 씨는 "적금이 만기 돼 목돈이 생겼지만, 앱으로 다른 상품에 가입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부담됐다"며 "창구에서 설명을 듣고 조건을 비교해 본 뒤 대면으로 다시 가입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해 은행을 찾았다"고 말했다.
'2024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개인(신용)정보 유출 등 보안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비대면 거래 시 인증 역시 '편리성이 떨어지더라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72.3%로, '현상 유지'(22.5%)나 '축소'(5.2%)보다 훨씬 높았다.
한 시중은행 창구직원 A씨는 "많지는 않지만, 보안 우려에 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임에도 창구를 찾는 젊은 층·중년층의 고객이 있다"고 말했다.
22년차 은행원 홍모(45) 씨도 "젊은 층은 급여 통장 개설이나 인터넷 이체 정지 해제 요청, 대출 문의를 하러 영업점에 대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 "화면도 안 보이고 어려워"…"투 트랙 전략 불가피"
고령층에게는 은행 앱이 높은 벽으로 다가온다.
2024년 10월 금융보안원 조사에서 80세 이상 고령층이 디지털 금융서비스 이용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이용 과정이 복잡하다"(72.7%)가 꼽혔다.
지난 23일 용인의 한 농협은행 창구 앞에서 만난 임모(67) 씨는 "딸이 앱을 깔아주고 설명도 해줬는데 어려워서 못 쓴다"며 "자동이체를 설정하고 보험비 빠져나가는 계좌를 바꾸려고 왔는데, 모르니까 그냥 직원에게 물어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통장을 정리하러 왔다는 김모(69) 씨도 "자식들이 몇번을 알려줬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고 화면도 잘 안 보인다"며 "전화로 안내 듣고 번호 누르는 것(ARS 방식)도 몇 번을 눌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은행에 와서 (금융 업무 과정을) 눈으로 직접 봐야 안심이 된다"고 밝혔다.
은행 직원 이모(34) 씨는 "고령 고객은 단순히 업무를 처리해드리는 것 이상으로 앱 사용 방법이나 인증 절차를 하나하나 같이 봐 드리는 경우가 많다"며 "설명을 들어도 집에 가서 혼자 다시 해보시기에는 한계가 있고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안심하시는 분들이 많아 결국 영업점을 찾는다"고 말했다.
서기수 서경대 금융정보학과 교수는 "고령층의 경우, 기본적인 앱 사용은 가능하더라도 오류 상황 대응이나 복잡한 인증 절차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 과정에서 불안과 부담이 누적되며 대면 거래를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층이 은행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일반적인 흐름으로 보긴 어렵다"면서도 "보이스피싱이나 계좌 해킹 등 금융사고에 대한 우려, 고액 이체 등 책임 부담이 큰 거래에서는 일부 대면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바일 중심의 비대면 채널과 대면 영업을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이 불가피하다"며 "대다수 일반 고객은 디지털로 이동하되, 영업점은 고액 자산가와 대면 수요 고객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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