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과 프랭크 게리의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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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과 프랭크 게리의 20년

에스콰이어 2026-04-25 00:00: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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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바젤 홍콩 2026의 전시장에 들어선 루이 비통 부스의 설치 전경. 루이 비통 재단 건물의 구조물을 형상화한 마케트와 왼쪽에 설치된 ‘블랙 크로커다일 뉴욕’의 모습이 보인다.

아트 바젤 홍콩 2026의 전시장에 들어선 루이 비통 부스의 설치 전경. 루이 비통 재단 건물의 구조물을 형상화한 마케트와 왼쪽에 설치된 ‘블랙 크로커다일 뉴욕’의 모습이 보인다.

홍콩 컨벤션 센터에 들어서 아트 바젤 홍콩 2026의 프리뷰에 입장하자마자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하늘을 나는 듯한 투명한 비늘의 물고기 형상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건 물고기가 아니었다. 날개였다. 아니, 돛이었다. 혹은 파도였다. 반투명 소재로 만든 흰 구조물이 여러 겹으로 포개진 채 마치 바람에 부풀어 오르듯 공간 위로 솟아 있었다. 파리 불로뉴 숲 한편에 서 있는 루이 비통 재단 건물의 상징과도 같은 옥상 구조물을 전시 사이즈로 옮겨놓은 마케트(maquettes)였다.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에서 탄생한 이 구조물의 자유로운 형태는 그가 20년간 루이 비통과 함께 만든 디자인 언어의 논리를 함축한다.

부스는 루이 비통과 함께한 프랭크 게리의 여정을 8개의 챕터로 나눠 회고 형태로 꾸몄다. 관람객은 마케트와 실제 작품들 사이를 걸으며 빨간 카펫이 깔린 한 건축가의 창작 세계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섰다. 파리 루이 비통 재단의 유리 돛 형태, 서울 메종의 곡선형 파사드, 그리고 악어와 물고기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카퓌신 백들이 나란히 놓인 풍경은 건축이 휴먼 스케일의 오브제로 이전되는 현장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지난 3월 말 그의 타계 이후 처음으로 아트 바젤 홍콩 2026에 차려진 루이 비통의 부스는, 2025년 말 캘리포니아에서 세상을 떠난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루이 비통이 바치는 헌사였다.


루이 비통 창립 200주년을 기념해 게리가 제작한 조각 & 트렁크 'A Tea Party for Louis'.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캐릭터 8인이 가상의 게리 건물 안에서 티 파티를 벌이는 모습.

루이 비통 창립 200주년을 기념해 게리가 제작한 조각 & 트렁크 'A Tea Party for Louis'.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캐릭터 8인이 가상의 게리 건물 안에서 티 파티를 벌이는 모습.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마케트가 전시된 모습.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마케트가 전시된 모습.

게리가 본 다른 곳

20세기 초반의 디자인과 건축을 지배한 명제는 단순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루이 설리번이 정식화하고 바우하우스가 신봉한 이 원칙은, 장식을 걷어내고 목적에 충실한 형태만을 남기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기능이 형태를 결정하고, 재료는 그 논리에 복무한다. 이후의 모든 건축 사조는 이 명제에 대한 순응 혹은 대안에서 출발했고, 그중 게리는 다른 곳을 바라본 대표적인 인물이다. 192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에프라임 오언 골드버그로 태어난 프랭크 게리의 삶은 처음부터 이중성으로 가득했다. 어머니는 그를 콘서트와 미술관으로 이끌었고, 아버지는 핀볼 기계와 슬롯머신을 팔며 술집을 전전했다. 전혀 다른 두 세계 사이에서 자란 게리는 정제된 예술 감수성과 날것의 일상 감각을 동시에 품는 법을 배웠다. 어린 시절 그는 할아버지의 철물점에서 남은 나무 부스러기들로 상상 속의 도시를 만들었다. 정해진 형태 없이 재료를 쌓고 무너뜨리며 새로운 공간을 발명하던 그 놀이의 감각이, 반세기 후 빌바오 구겐하임의 티타늄 외벽과 파리 루이 비통 재단의 유리 돛으로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루이 비통의 부스를 통해 확연히 드러나는 게리의 미학의 한 축은 물고기다. 루이 비통 재단 마케트의 은빛 비늘 같은 외장재, 지느러미처럼 솟구치는 돌출부, 역동성을 드러내는 유려한 곡면에서 물고기를 연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게리는 동료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들이 그리스 신전 양식을 모방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인간보다 3억 년 먼저 물고기가 있었다. 만약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면, 왜 그리스에서 멈추려 하는가?” 그가 물고기를 비롯한 유기체적인 형태를 추상화하는 건축 표현에 매진하기 시작한 이유다.

그에게 형태는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이고 표현이었다. 그는 건물이 도시와 대화하고, 보는 이의 감각을 뒤흔들며,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존재여야 한다고 믿었다. “건축은 정의상 3차원적 오브제, 즉 조각이다”라는 그의 말은 선언에 가깝다. 기능주의가 건물을 문제 해결의 도구로 보았다면, 게리는 건물을 감각의 구현체로 봤다.

그를 대표하는 건축물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1997)은 그 철학을 구체화한 사건이었다. 티타늄 패널로 뒤덮인 이 건물의 외벽은 보는 각도와 빛의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표정을 짓는다. 건물 하나로 쇠락해 가던 도시 하나를 부활시키며 ‘빌바오 효과’라는 표현까지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지난 세기의 건축 사조를 정의하는 하나의 이정표로 꼽힌다. 그 연장선에 우뚝 서 있는 것이 바로 파리 루이 비통 재단이다. 불로뉴 숲속에 솟아오른 유리 돛들은 빛을 담고 움직임을 포착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건물인지 조각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부스에 전시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의 축소 모형은 그의 언어가 현지의 감각에 순응하여 어떻게 번역되는지를 보여준다. 2019년 청담동에 문을 연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게리가 한국에서 선보인 유일한 건축물이다. 설계의 출발점은 춤과 한국의 전통 건축이었다. 흰 도포 자락을 너울거리며 학의 몸짓을 표현하는 동래학춤, 그리고 18세기 성곽 수원화성의 굽이치는 구조에서 건물의 곡선을 끄집어냈다. 유리 패널로 감싼 외관은 바람에 펄럭이는 도포처럼 가볍고, 동시에 성벽처럼 단단하다. 루이 비통 재단이 유리 돛으로 빛을 담았다면,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같은 언어로 움직임을 담았다.


루이 비통과 프랭크 게리가 협업한 핸드백들.

루이 비통과 프랭크 게리가 협업한 핸드백들.

손에 쥐어보는 게리의 건축

프랭크 게리의 건축은 수십 수백 미터의 파사드를 통해 공간과 대화한다. 그러나 루이 비통과의 협업에서 보여준 언어는 놀랍도록 친밀한 스케일로 축소되어 우리의 신체와 만난다. 핸드백, 향수 스토퍼, 시계. 그의 유기적 디자인 언어를 품은 오브제들이 그의 건축적 사유를 담은 새로운 그릇이 됐다.

2014년 루이 비통 창립 160주년을 기념한 트위스티드 박스(Twisted Box) 백은 그 시작이었다. 모노그램 패턴이 비틀리고 왜곡된 이 백은 게리가 평생 추구해온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힘’을 직접 구현한다. 기능주의적인 사각형의 핸드백이 수납과 편의를 최적화한다면, 트위스티드 박스 백은 그 낯선 형태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2023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처음 공개된 10개의 한정판 핸드백 컬렉션은 그 논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카퓌신 MM 콘크리트 포켓은 게리 건축물의 콘크리트 외벽 질감을 가죽 표면 위에 재현했다.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리의 건축적 태도가 핸드백 소재 위에 번역된 것이다. 카퓌신 BB 크록은 그의 악어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핸들을 달았고, 카퓌신 MM 플로팅 피시와 미니 드로운 피시는 물고기 모티프를 가죽 위에 새겼다. 뉴욕 IAC 빌딩의 사선으로 휘어지는 곡면 파사드에 바치는 오마주인 카퓌신 BB 아날로그까지, 각각의 백은 게리의 건축적 언어를 번역한 미시 건축물이다.

2022년 레 젝스트레 향수 컬렉션을 위해 디자인한 무라노 유리 블라썸 스토퍼는 또 다른 차원이다. 무라노의 장인정신과 게리의 유기적 형태 언어가 만나 탄생한 이 스토퍼의 디자인은 향기에서 받은 영감을 추상화한 조각에 가깝다. 2024년 출시된 땅부르 워치는 한 세대의 조형 언어를 이끈 긴 대화의 마지막 장이 됐다. 라 파브리끄 뒤 떵 루이 비통의 정밀한 시계 제작 기술과 프랭크 게리의 유동적인 조각 형태를 결합한 이 시계는, 사파이어로 조각되고 수작업으로 마감했으며 케이스 뒷면에는 그의 서명을 새겼다.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조차 건축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선언처럼.

루이 비통에 따르면, 게리는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 결국 답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아트 바젤 홍콩 2026의 루이 비통 부스는 그 호기심이 남긴 궤적이다. 건물에서 핸드백으로, 향수 스토퍼에서 시계로. 스케일은 달라졌지만 게리가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형태는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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