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예술가와의 대화는 때로 작품 그 자체보다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필자는 최근 팔레스타인의 중견 화가 ‘라완 아나니(Rawan Anani)’에게 몇 차례 인터뷰를 제안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녀의 삶과 예술, 그리고 현재 팔레스타인 땅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그 자체로 현재 팔레스타인이 처한 비극적 고립을 증명하는 듯 했다.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가로지르는 봉쇄, 불안정한 전기 공급, 그리고 매일같이 날아드는 포화를 지켜보는 ‘예술가와의 인터뷰’는 어쩌면 사치스러운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녀의 침묵을 거절이 아닌, 다른 방식의 ‘응답’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녀가 이미 캔버스 위에 쏟아낸 강렬한 색채들이 그 어떤 육성보다 더 선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거장의 유산을 넘어: 팔레스타인의 DNA를 그리다
‘라완 아나니’는 팔레스타인 현대 미술의 선구자이자 거장인 ‘나빌 아나니(Nabil Anani)’의 딸이다. 아버지가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맞서 팔레스타인 예술가 연맹을 결성하고, 점령 당국이 금지한 ‘팔레스타인 국기 색깔’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자랐다. 그녀에게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취미가 아니다. 이것은 대대로 이어온 ‘최후의 보루’이자 민족의 DNA를 보존하는 기록이다.
그녀의 작품들에는 커다란 특징이 있다. ‘타트리즈(Tatreez)’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전통 자수 문양의 색칠이다. 4장의 작품 속 여성들이 입고 있는 옷을 유심히 살펴보라! 붉은색, 초록색, 황금색으로 색칠한 문양들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다. 이 문양들은 각 마을의 역사, 여성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그 땅의 농작물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나니’는 붓 끝으로 이 자수를 한 땀 한 땀 새기며, 물리적으로도 결코 지울 수 없는 문화적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2. 네 개의 작품으로 본 팔레스타인의 풍경: 일상(日常)
그녀의 작품 4점은 우리에게 전쟁 뉴스에서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팔레스타인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1) 공유되는 빵과 소금(사진 1): 여인들이 긴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장면은 지극히 평화롭다. 팔레스타인 문화에서 음식을 함께 나누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서약과도 같다. 홍차를 따르고, 올리브 오일, 빵과 ‘크나페(팔레스타인의 디저트)’가 놓인 식탁은 외부의 압박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공동체의 단단함을 상징하는 듯 하다.
(2) 올리브 나무 아래의 약속(사진 2): 수백 년 된 올리브 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여인들의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올리브 나무는 상징적인 격전지다. 팔레스타인에게 올리브 나무는 단순한 농작물을 넘어 뿌리 깊은 생계, 문화, 그리고 땅에 대한 권리를 상징한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농업 생산의 약 25%를 차지하는 핵심 기반이지만,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에 의해 수천 그루가 훼손되거나 수확이 방해받는 등 갈등의 주요 현장이 되고 있다. 점령군에 의해 뿌리 뽑히는 나무들을 대신해, 그녀는 캔버스 위에 끊임없이 올리브 숲을 재건한다. 이는 땅에 대한 영원한 소유권 주장이자 회복력의 은유다.
(3) 공존의 건축학(사진 3): 구릉지 위로 빼곡히 들어선 마을 풍경 속에서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트와 기독교 교회의 종탑이 나란히 서 있다. 이는 ‘아나니’가 꿈꾸는, 혹은 기억하는 팔레스타인의 본래 모습이다. 배타적인 종교 전쟁이 아닌, 다양한 신앙이 어우러져 살아가던 성지의 평화적 원형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4) 음악과 춤으로 승화된 저항(사진 4): 우드(Oud)를 연주하고 다부카(Dabke)를 추는 장면에서 인물들은 비록 얼굴이 없지만, 몸짓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을 표현한다. 전쟁으로 인한 마냥 슬픔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저항임을 작가는 보여주는 듯 하다.
3. ‘얼굴 없는 인물’이 주는 메시지
대부분 ‘아나니’의 작품 인물들에게 이목구비가 없다는 점은 그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이 인물이 특정한 ‘누구’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땅을 딛고 서 있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는 고통받는 전 세계의 모든 약자, 혹은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 자신의 얼굴이 될 수도 있다. 얼굴을 비움으로써 필자는 그 빈자리에 자신의 감정을 채워 넣게 되며, 이는 지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강력한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최근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인명 피해와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떠올릴 때, 그녀의 작품 속 ‘얼굴 없는 평화’는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작가는 비극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우리가 되찾아야 할 가치’를 찬란한 색채로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으로 현재의 상실감을 극대화한 듯 하다.
4. 수무드(Sumud): 꺾이지 않는 마음의 미학
팔레스타인에는 아랍어 ‘수무드(Sumud)’라는 단어가 있다. ‘꿋꿋함’, ‘인내’, ‘지속’을 뜻하는 이 단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철학적 삶이다. ‘라완 아나니’의 예술은 바로 이 ‘수무드’의 시각적 발현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잿빛으로 만들려 하지만, ‘아나니’는 그 위에 더 강렬한 원색을 덧칠한다. 폭탄이 건물을 부술 때, 그녀는 붓으로 집을 짓고 나무를 심는다. 그녀의 그림 속에 흐르는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는 “우리는 죽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남아 번영할 존재”라는 강력한 생존의 선언과도 같다.
5. 결론: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어느 팔레스타인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기사를 쓰는 필자에게도, 이 글은 하나의 기도와 같다. ‘라완 아나니’와 끝내 연락이 닿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하지만,난 그녀를 꼭 만나보고 싶다. 그녀가 그린 올리브 나무의 잎사귀 하나, 여인의 옷자락에 새겨진 붉은 자수 한 땀이 이미 나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단순히 먼 나라의 정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문화적 유산이 파괴되는 보편적 비극이다. ‘라완 아나니’의 작품은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먼 훗날이 될지 모르는 언젠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장벽이 무너지고, 필자는 작가와 직접 마주 앉아 이 글에 썼던 감상을 나누는 날을 고대한다. 그때까지 그녀의 붓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예술은 전쟁보다 길고, 평화는 결국 색채를 타고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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