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박동선 기자] 서해의 매서운 해풍을 뚫고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 끝에는 열세 살 소녀의 단단한 꿈이 실려 있었다. 앳된 얼굴 뒤에 숨겨진 매서운 승부사 기질은 안산의 필드를 순식간에 차세대 퀸의 독무대로 바꿔놓았다.
지예은(13·노형중)은 24일 경기 안산시 대부도 더헤븐리조트 내 더헤븐CC에서 막을 내린 ‘2026 유에스 키즈 골프 코리안 챔피언십(U.S. Kids Golf Korean Championship)’ 여자 11∼12세 디비전에서 최종 합계 14언더파 202타라는 압도적 스코어로 정상에 올랐다.
남녀 전 부문을 통틀어 가장 낮은 타수를 적어낸 지예은의 '골든 샷'은 현장을 찾은 이들에게 묵직한 전율을 선사했다.
◇ 14언더파의 전율, 필드를 지배한 정교한 호흡
지예은이 써 내려간 14언더파의 서사는 단순한 성취를 넘어선 집념의 결과물이었다. 전날까지 보기 4개를 범하며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이날 최종 라운드에서만 무려 9개의 버디를 잡아내는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했다.
경기 직후 지예은은 “대회에 나올 때 우승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생각보다 플레이가 잘 풀렸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이날 무결점 플레이의 비결은 티샷에서 퍼트까지 이어지는 군더더기 없는 밸런스에 있었다. 먼저 그린 위에서의 집중력을 복기한 그는 “이날은 롱 퍼팅이 잘돼 숏 퍼팅 실수가 없었다. 앞선 이틀 동안 숏 퍼트 실수가 나와 아쉬웠는데 마지막 날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다”라고 설명했다.
날카로운 드라이버 샷 역시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지예은은 “티샷이 퍼지지 않고 멀리 나가준 덕분에 경기를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풀어갈 수 있었다”며 안정적인 경기 운영의 배경을 밝혔다.
여기에 최상의 코스 컨디션도 그에게 힘을 보탰다. 그는 “코스가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벙커도 깔끔했다. 잔디 컨택도 원하는 느낌대로 잘 이루어졌다”고 덧붙이며 필드에 대한 만족감을 전했다.
◇ 3일간의 도보 사투, 아빠와 함께 빚은 ‘긍정의 멘털’
이번 대회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3일 내내 카트 없이 도보로 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주니어 선수에게는 체력적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였으나, 지예은은 이를 아버지가 직접 캐디로 나선 ‘부녀 동행’의 정서적 안정감으로 승화시켰다. 지예은은 “국내 대회에서는 카트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3일 동안 걸어서 경기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아빠와 같이 라운드해서 정말 좋았다”고 회상했다.
곁에서 지켜본 아버지 지 씨는 지예은의 가장 큰 강점으로 '회복 탄력성'을 꼽았다. 그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고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 용기를 낸다. 그런 모습을 대견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성적을 좇는 선수를 넘어 골프 자체를 오래도록 사랑하는 선수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은, 지예은이 필드 위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 “롤모델은 김효주 프로”, LPGA를 향한 거침없는 티샷
제주 노형중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뒤 묵묵히 연습에 매진하고 주말마다 아버지와 땀방울을 흘려온 지예은에게 이번 국제무대 제패는 꿈을 향한 확실한 이정표가 됐다.
일주일에 3~4차례 원포인트 레슨을 받고 한 달에 한두 번 실전 대회를 치르며 감각을 다져온 시간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가족들조차 “잘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1위까지는 예상 못 했다”고 놀랄 만큼 지예은의 성장은 가팔랐다. 지예은의 시선은 이미 더 넓은 세계를 향하고 있다.
그는 “김효주 프로가 롤모델이다.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김효주 프로처럼 멋진 실력을 보여주는 LPGA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깨끗한 잔디 위에서 자신의 샷을 완성해갈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지예은의 눈빛에는 세계 무대를 정복하려는 차세대 골프 스타의 갈망이 서려 있었다.
한편, ‘2026 유에스 키즈 골프 코리안 챔피언십’은 지예은을 비롯한 수많은 원석을 발굴하며 글로벌 유소년 시스템의 성공적인 국내 안착을 알렸다.
뉴스컬처 박동선 dspark@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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