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사람의 그림 이야기 - 멈추지 않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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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람의 그림 이야기 - 멈추지 않는 말들

문화매거진 2026-04-24 14:54:12 신고

▲ 멈추지 않는 말들 / 사진: 김태이 제공
▲ 멈추지 않는 말들 / 사진: 김태이 제공


[문화매거진=김태이 작가] 몇 달 전부터인가 학부 친구의 공방에서 잠깐 일을 도와주게 되어, 간간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흙을 만질 일이 생겼다. 우리는 같은 대학교 도예학 학부를 졸업했는데, 그 친구가 우리 동네 근처에 공방을 열었다는 사실을 듣고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게 1년 전의 일이었다. 요사이 나도 일이 비어 내 작업을 고민하던 와중이었기에, 친구의 바쁜 일을 도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시간이라 생각했다. 26년의 시작에서 여느 예술 하는 사람이 그러하듯 새로운 나의 작업을 찾고 있었고, 혹시 이 일이 내게 어떤 것을 불러들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운명론자의 직감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나는 21년도 졸업 이후 흙이라는 재료를 만질 일이 전무했기 때문에 첫 방문에서 많이 긴장했었다. 맡은 작업들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들이었지만-도자기 원데이 클래스에서 만들어진 고객들의 작품을 다듬고 리터칭하는 일이었다-손에 와 닿는 흙의 찬기가 도예 전공자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그 기색을 애써 숨기며, 그나마 오랜 친구와도 같은 화홍 적색 붓을 잡고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스쳐 내려그었다. 그렇게 어렵게 작업했던 시간이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그즈음 친구가 공방 한구석을 정리하면서 내게 초벌된 기물들을 한아름 넘겨주었다. 학부 때 도예를 하면서도 내가 특히 자신 있고 좋아했던 작업은 드로잉이었기 때문에, 초벌 기물은 친숙한 재료였다. (보통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초벌 기물에 그림을 그리고 재벌을 하는 방식을 택한다.) 정리하면서 다 버린다고 하는 것을 머리를 굴려가며 내게 필요한 것만 선별해 두 박스를 내 방으로 가져왔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재료들이 내 방 한구석을 크게 차지하게 되었고, 나는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나 보다.

작년쯤 나는 내게 뿌리 깊이 자리한 역마살(驛馬煞)을 처음으로 마주했었다. 그것이 말이라는 것, 그리고 내 안에 자리한 말이라는 것. 애니메이팅에서 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에, 언젠가 말을 해부학적으로 분해해 움직임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욕망. 그 모든 것이 모여 작은 접시 하나를 들고 말을 하나씩 그려보는 행동으로 응축되었다. ‘그냥 하나 만들어보지 뭐’ 하던 것이 이제는 몇 개의 말이 달리는 시퀀스로 완성되었다. 지금 내 방에는 재벌까지 완료된 말들이 서른여섯 개 있다. 초벌 기물이든 재벌 기물이든 작업을 마쳐도 방 한구석을 차지하는 부피는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연장된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들어 특히 운명론자의 마음가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원래의 좌우명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긴 하지만, 결국 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또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결과를 걱정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아주 어린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 ‘쿠로코의 농구’에서 감명을 받은 이후였다. 어떻게 살고자 할 때 삶의 태도를 설정하는 일은, 그 사람이 무엇을 경계하는지 드러내는 일 같기도 하다. 나는 특히 모든 것의 결과를 미리부터 불안해하는 사람이기에, 어떤 운명 같은 것도 전체적인 흐름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재작년보다 작년이 편했고, 작년보다 올해가 더-바쁘기는 무척 바쁘지만-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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