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5년 11월1일 15시 전남 장흥군 탐진강변에서 개최된 이동진 평론가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북 토크쇼>를 정리하는 현장 기사를 기획 시리즈로 출고합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하는 독서의 가치와 영화 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 기사는 마지막 4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독서’와 ‘운동’ 만큼 새해 다짐으로 많이 선택되는 것도 없다. 그만큼 중요하고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다들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습관화를 만들고 싶지만 작심삼일로 그치고 만다.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보고 싶다면 이동진 평론가의 조언대로 “남이 꼭 읽어봐야 돼라고 말하는 책을 보지 말고 책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가서 가장 재밌을 것 같은 책을 보는 것”이 좋다.
그게 웹소설을 그냥 종이책으로 바꿔서 낸 책이든 아니면 기술서든 무엇이든 간에 사실은 책을 좋아하려면 문자를 좋아해야 되는 것이다. 활자를 좋아해야 된다. 어떤 오락은 1분만에 즐거운 오락이 있는데 물론 안 해봤고 절대 하면 안 되는 오락이겠지만 마약 같은 게 그렇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선. 반면에 어떤 오락은 그게 오락이야 싶을 정도로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근데 내가 살면서 적지 않은 시기를 지나오면서 느꼈던 건 빨리 재미있게 느끼는 걸수록 별로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그 재미를 느끼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그런 것일수록 인생에서 굉장히 큰 훌륭한 오락이 된다고 생각한다.
전남 장흥에서 북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는 이동진 평론가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평생 동안 지속되는 최장기간의 오락이다. 이 평론가는 “책이 오락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저항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지만 감히 자신해서 말씀드릴텐데 책은 일생에서 가장 질리지 않는 오락”이라고 단언했다. 가장 건전한 오락 즉 독서 입문을 하기 위해서는 재차 강조하고 있지만 쉽고, 재밌고, 관심 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
기필코 오락이 맞다. 반드시 만약에 책 읽는 걸 오락으로 못 느끼셨다면 습관이 안 돼서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진입 장벽도 있고 세상에 처음에 더 재미있는 것들도 많지만 쉬운 것 재밌는 것을 읽으셔야 된다. 그래야 책 읽는 게 재밌으니까. 그 다음 단계로 뭐 할까? 이렇게 이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나 같은 사람이 아무리 <사피엔스> 읽어라. <정의란 무엇인가> 읽어라고 해도 듣지 마시고 처음 단계라면 재밌는 거 쉬운 거 이런 거 읽는 게 좋다.
강연이 마무리되고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이 평론가는 그동안 만났던 영화감독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누구인지 묻는 질문을 받았고 “영화감독을 만나는 게 직업인 사람이라 한 237명 정도 만났다”고 입을 뗐다.
그래서 얘기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냥 최근에 만난 감독을 말씀드려보겠다. 앞에 237명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인상 깊은 감독을) 1명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사 전날 이 평론가는 <우리들>과 <세계의 주인>으로 유명한 윤가은 감독을 만났는데 “이전에도 만났던 분인데 지금 <세계의 주인>이라는 영화가 지난주에 개봉했는데 올해 가장 훌륭한 한국 영화 3편 중에 1편이다. 굉장히 좋은 영화”라고 말했다.
(<파이아키아>에서 감독 인터뷰를 할 때 대본을 써주는 작가가 없어서) 내가 다 알아서 하는 건데 그러니까 오프닝도 생각도 안 한다. 즉석에서 생각나는대로 소개하는데 내가 윤가은 감독을 뭐라고 소개했냐면. 이 감독님을 만날 때마다 정말 만드는 영화와 똑 닮아 있는 그런 느낌을 준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항상 깊은 신뢰감을 갖게 된다. 이렇게 했다. 내가 그렇게 소개를 했다는 얘기는 그분한테 그렇게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한 거였다는 뜻이고 나는 좋은 사람인 예술가가 좋은 예술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쁜 사람도 좋은 예술을 만들 때가 있다. 너무 예를 들고 싶은데 예를 들 수가 없다. 나도 먹고 살아야 된다. 근데 어떤 사람은 이 사람 정말 느끼는 게 너무 사람한테 풍기는 그런 게 너무 선하고 좋다. 근데 영화에서 풍기는 거랑 똑같다. 그러면 너무 신기하고 신뢰감이 깊어 진다. 윤가은 감독이 그런 사람이었다.
한 청중은 이 평론가를 두고 “평론계의 아이돌”이라고 묘사하며 빨간색 안경을 끼는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이 평론가는 약간 부끄러워 하면서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빨간색을 선택한 게 아니고 빨간색이 나핱네 찾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간단히 말하면 직장생활을 한 13년 정도 했는데 대학교 4학년 때 언론사에 들어가게 됐다. 그래서 13년만에 직장을 나오고 19년째 프리랜서 영화 평론가로 살고 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 집에서 뒹굴거리는 백수 시기가 있지 않았겠는가? 그때 집에서 평상시에 쓰던 안경을 깨먹었다. 새로 사야 되는데. 동네 안경점에서 안경태를 고르는데 남들처럼 그냥 갈색 아니면 검은태 이런 걸 써왔다. 한 번도 색깔 있는 안경을 쓸만한 용기와 뻔뻔함이 나한테 없었다. 근데 직장을 그만둔 상태에서 안경점에 컬러풀한 색깔들이 많은데 빨간색 안경이 있더라.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빨간 안경을 쓸까 하다가 이제 벗어서 도로 놓으면서 아 내가 무슨 빨간 안경이야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오기가 생겨 나는 것이다. 나라고 왜 이런 걸 못써! 이렇게 해서! 더군다나 직장까지 그만뒀는데! 뭐가 내가 겁이 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빨간 걸 5만 5천원에 샀다. 그 안경을 쓰게 된 것이 빨간색과 연관된 유일한 계기다. 만약 파란 안경을 썼다면 달라졌을텐데 우연히도 써본 안경이 빨간색이었다.
근데 그날 이후로 이 평론가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냥 빨간 안경을 썼을 뿐인데 보통 한국 남자가 쓸 것 같지 않은 안경이니까 어딜 가면 항상 왜 빨간 안경을 쓰십니까? 물어본다. 좋은 스몰토크의 소재가 된다. 누군가 이름을 기억 못해도 빨간 안경이라고 기억을 해준다. 심지어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나 감독들도 그렇게 기억하더라. 굉장히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고 한 번은 피디가 프로그램 타이틀로 ‘빨간 책방’ 어때요? 그래서 이제 빨간 책방이 됐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컬러가 됐는데 솔직히 말하면 빨간색을 좋아한 것도 아니고 안경 하나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삶의 어떤 패턴과 스타일과 구조가 바뀌었다고 그럴까. 사실 초기에는 양희은씨냐? 표인봉씨냐? 뭐 이런 얘기도 들었다. 근데 요즘은 빨간 안경 검색하면 내가 양희은씨보다 먼저 나온다. 한 20년간 썼더니 드디어 통하는 것 같다.
한편, 이 평론가는 행사 전체를 마치며 나름의 독서관을 피력했지만 모두 자기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랜 세월 책을 보면서, 수도 없이 독서에 실패해본 사람으로서 나름대로는 책에 관해서 느낀 것들을 그냥 말씀을 드렸는데. 내가 말씀드린 독서 방식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고 사람마다 다르다. 100만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만 가지의 독서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서 평생의 좋은 습관으로 삼으면 나는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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