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판화하기② 준비물에 이어
[문화매거진=MIA 작가] ‘왜 원하는 대로 안 될까?’ 애쿼틴트를 하며 가장 많이 했던(지금도 하는) 생각이다.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밑 작업이 잘 안 되었을 수 있고, 송진 가루의 양이 적거나 너무 많았을 수 있다. 혹은 부식을 여러 번 하는 과정에서 송진 가루가 떨어져 나가서 의도대로 표현이 안 됐을 수 있다. 이유가 뭐든 하는 수 없다. 밑 작업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애쿼틴트(aquatint)란, 동판화에서 선이 아닌 면의 부식으로 톤을 만드는 방식이다. 수채화 같은 부드러운 효과를 낸다는 의미에서 명칭에 아쿠아(aqua)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쿼틴트를 할 때는 판에 송진 가루를 뿌린 후, 분말을 판에 점착하기 위해서 가열하는데, 송진 가루는 워낙 미세한 크기의 분말 형태라 송진 가루가 점착된 판을 부식하면 매우 작은 점 형태의 무수한 홈이 생긴다. 부식을 오래 하면 홈은 더 깊어지고 잉크가 더 많이 들어가게 된다. 부식을 조금 한 부분은 옅은 색을, 더 오래 한 부분은 진한 색을 표현할 수 있다는 원리를 활용해 명암을 만드는 것이 애쿼틴트 기법이다.
메조틴트, 드라이 포인트 등 동판화의 다른 기법을 소위 말하는 것처럼 ‘찍먹’하듯 시도해 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내게 가장 매력이 있는 건 아무래도 애쿼틴트라는 생각으로 이 기법만을 고수하게 되었다.
애쿼틴트가 내게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원리의 단순함인 것 같다. 시간에 따른 부식 정도로 명암을 표현할 수 있다는 원리는 처음에 기법을 배울 때부터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명쾌함이 좋았다. 애쿼틴트 기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밝은 순서대로 하드그라운드를 칠해 막아 나가기만 하면 되는 기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원리가 단순하다고 해서 작업 과정까지 간단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작업을 흐트러트릴 변수는 어느 때고 도사리고 있다. 특히 도안과 다른 부분을 하드그라운드로 막았을 때가 가장 번거롭다. 이 실수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판을 다시 만드는 것.’ 점착된 송진을 깨끗이 씻어내고, 새로 송진 가루를 뿌려 가열하는 작업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어느 작업이든 비슷한 어려움인 있기 마련일 테고, 더욱이 이 기법만이 지닌 아름다움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은 원리와 상응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애쿼틴트에서 명도는 연속된 단계가 아닌 분절된 단계로 표현된다. 말하자면 밝은 부분에서 어두운 부분까지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픽적으로 표현된다. 만화가들이 음영을 톤으로 구분해 표현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람마다 이 기법을 활용하기 나름인 것 같은데, 나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명도 차를 최소화하여 작업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색을 3단계(흰색, 회색, 검은색)로만 구분한다. 이 단계는 얼마든지 더 늘려서 섬세한 명도 차로 작업할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런 시도를 해본 적 있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렇듯 애쿼틴트 기법은 내가 그림에서 어떤 단순함을 추구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업이 교착 상태에 있었을 때, 기억하기로는 꽤 극적으로 완성도를 끌어 올려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동료 작가나 가르치는 수강생들에게 익숙한 손의 습관을 한번 떠나보고 싶을 때, 판화를 시도해 보라 권유하곤 한다. 단순히 기법을 연마하는 수준을 넘어 작업 방향에서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한 번 열었던 문을 반복해서 두드리고 반복해서 여는 꼴인 것 같다. 아직은 여기서 새로움의 기쁨이 끝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이 방식으로 계속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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