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사실상 무기한 휴전을 선언했지만 이란 해상봉쇄를 유지하고 새 제재를 발표하는 등 경제적 압박은 강화했다. 낮은 이란 전쟁 지지율에 더해 경제 정책 지지율이 급락하며 전쟁 재개에 부담을 느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지도부 분열로 빠른 협상 타결이 어렵다고 판단해 일단 시간 벌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투 즉시 재개를 피한 배경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지지율 부담이 자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6~2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성인 2596명을 대상으로 수행해 21일 공개된 AP-NORC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33%를 기록해 같은 기관 전달 조사 결과(38%)에 비해 5%포인트(p) 하락했다. 이 기관 조사에서 2기 취임 뒤 최저치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67%로 전달보다 7%포인트 상승했다.
이란 전쟁에 대한 지지율(32%)이 여전히 저조한 것에 더해 경제 정책 지지율이 가파르게 하락한 것이 눈에 띈다. 이번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지지율은 지난달(38%)보다 8%포인트 급락한 30%를 기록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생활비 분야 지지율은 23%로 더 낮았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6%였다.
생활비 분야의 경우 공화당원 지지율도 절반(51%)에 불과했다. 특히 45살 미만 젊은 공화당원 10명 중 6명가량이 트럼프 대통령의 생활비 관리 방식에 불만을 표했다.
같은 날 공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36%로 지난달에 이어 같은 기관 조사 기준 2기 취임 뒤 최저치에 머물렀고 생활비 문제 대응 지지율도 26%에 불과했다. 이란 전쟁이 비용 만큼 가치가 있다는 응답은 26%였다. 이 조사는 지난 15~20일 미국 성인 4557명을 대상으로 수행됐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유가를 밀어 올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는 만큼 이란 전쟁은 생활비 문제와 직결된다. 당장 미국 전국 평균 휘발유값은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서 1년 전보다 갤런당 1달러가량 올랐다.
<AP>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물가 불만 급증에도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미 CNBC 방송에 이란과의 전쟁을 여전히 "짧은 여정"으로 축소해 표현하며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가 아닌 90달러"인 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란 전쟁 발발 뒤 국제유가는 30%나 뛰었다.
퇴역 공군 대위 캐스린 브라이트(60)는 <AP>에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걸 후회한다며 "배신 당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전쟁 회피, 낮은 생활비 등의 공약에 끌려 트럼프에 투표했지만 "대통령은 마치 고등학교 학급 회장 같다. '매일 피자를 먹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곤 당선되자마자 '거짓말이었다'고 하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핵심 지지층 이탈 양상도 가속 중이다. 영향력 있는 우익 논평가 터커 칼슨은 20일 공개한 개인 방송에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를 도운 것을 오랫동안 "괴로워할 것"이라며 "사람들을 오도한 것을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 이란 지도부 분열로 빠른 협상 타결 어렵다고 판단한 듯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지도부 분열로 협상이 쉽게 타결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일단 시간 벌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성명에서 "이란 정부가 심각하게 분열"돼 있고 "그들 지도부와 대표들이 통일된 제안을 내놓을 때까지", 그리고 "그들의 제안이 제출되고 논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휴전을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휴전 연장 기한과 관련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이날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이 내부 정리를 하도록 3~5일 정도의 휴전을 해줄 의향이 있다"며 "(휴전이) 기한 없이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란 지도부 혼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 첫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를 제거하고 이후 협상을 이끌 수 있는 유력한 인물로 평가되던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까지 살해하는 등 고위층을 잇달아 제거한 결과다.
복수의 미 언론은 이란 지도부 분열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다. <AP>는 하메네이 사후 현재 이란 권력 중심엔 최고국가안보회의가 있는데 이 기구가 다양한 정치적 견해 및 종종 치열한 경쟁 관계를 표출하는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의 1차 협상을 이끈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의장이 중심 인물인 가운데 그와 정치적 경쟁 관계이자 대미 강경파인 사이드 잘릴리가 자리하고 있고 형식상의 의장은 개혁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다.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취임 뒤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과의 협상 결렬 국면에서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이란 정부가 통일된 조직이 아니며 강경 분파는 트럼프 대통령 요구에 굽힐 의향이 없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또 백악관 내에서 이란이 정말 협상이 가능한 처지에 있는지, 약속을 한다면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대두됐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당국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폭격 재개에 대해 물으면서도 미국 내부에서 인기가 없는 적대행위 재시작과 분쟁 연장에 대해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이번 휴전 연장은 결국 이란이 구체적 제안을 내놓을 때까지 미국이 이란에 무기한 압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진이 찾은 절충안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이 진행될 수 있을지 이란에 대한 새 공습을 지시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BBC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관계에서 시간을 더 벌기로 결정했다"면서 "그러나 이는 그가 며칠 혹은 몇 주 안에 다시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다만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지도부가 분열됐다고 판단한 건 "오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방송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암살 뒤 이란 지도부는 매우 단결돼 있다"며 "새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와 그 주변 인물들은 지난 15년간 함께 일해 온 팀"이라고 설명했다.
대이란 해상 작전 확대·새 제재 등 경제 압박은 강화
트럼프 정부는 무기한 휴전과 동시에 경제 압박을 확대하며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 기간 동안 이란 해상봉쇄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미군은 이란을 겨냥한 작전을 중동을 넘어 인도양까지 확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미 국방부 소셜미디어를 보면 21일 미 국방부는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 사이 공해상에서 이란산 원유 구매를 통해 이란 지원 혐의를 받는 제재 대상 유조선 티파니호를 나포했다.
미 재무부는 21일 '경제적 분노(Economic Fury)' 작전 일환으로 이란 미사일 및 무인기(UAV) 조달망에 대한 새 제재를 발표했다. 이란 정권을 대신해 이들 무기 또는 무기 부품을 조달하거나 운송한 혐의를 받는 개인, 단체, 항공기 등 14곳이 제재 목록에 올랐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 해군은 이란 항구 봉쇄를 계속할 것"이라며 "며칠이면 (이란 석유수출기지) 하르그섬 저장 시설은 포화 상태가 될 거고 취약한 이란 유정은 가동 중단될 것이다. 이란의 해상 무역을 제한하는 것은 정권의 주요 수입원을 직접 겨냥하는 조치"라고 밝혔다. 또 "재무부는 이란 정권이 자금을 창출, 이동, 송금하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해 경제적 분노 작전을 통한 최대 압박을 지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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