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경영진이 강조해 온 “인공지능(AI)은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불과 한 분기 만에 주요 은행들이 AI를 통한 효율화와 인력 감축을 실적 개선의 핵심 요인으로 직접 언급하면서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주요 은행들은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는 동시에 AI 기반 비용 절감과 인력 축소를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브라이언 모이니한 뱅크오브아메리카 CEO는 불과 몇 달 전까지 직원들에게 “AI를 걱정할 필요 없다”고 강조했지만, 최근 입장을 일부 수정했다. 1분기 순이익 86억 달러를 발표하며 그는 “기술 도입과 업무 제거를 통해 자연 감소 방식으로 약 1000명을 줄였다”고 밝혔다. AI 도입이 실제 인력 축소로 이어졌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다른 대형 금융기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JP모건체이스,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웰스파고 등 미 5대 은행은 총 470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18% 성장했지만, 같은 기간 약 1만5000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이들 은행은 AI가 자동화와 효율성 향상에 기여했다고 공통적으로 밝혔다.
다만 금융권은 이를 ‘일자리 대체’가 아닌 ‘생산성 개선’으로 표현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2만 명 감원 계획을 ‘효율성 향상’으로 설명했으며, 실제로 오픈AI와 앤트로픽 등의 기술을 활용해 법률 문서 검토, 계좌 승인, 고객 데이터 처리 등의 업무를 자동화하고 있다.
은행들은 여전히 AI를 “업무 부담을 줄이고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도록 돕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특히 금융업의 핵심 경쟁력인 고객 관계와 신뢰는 AI가 대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AI 적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웰스파고에서는 AI가 대출 심사 메모 작성, 인수합병(M&A) 제안서 제작, 고객 상담 업무까지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찰리 샤프 CEO는 “AI는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며 “많은 경영진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공개적으로는 말하기를 꺼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AI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엇갈린다. 모건스탠리는 자사의 AI 투자 추천 시스템을 영화 아이언맨 속 ‘자비스’에 비유하며 인간의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로 강조한다. 반면 일부에서는 영화 메간을 언급하며 AI가 장기적으로 인간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결국 AI가 ‘일자리를 없애는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일자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가 더 중요한 논쟁으로 떠오르고 있다. 월가의 사례는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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