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사진.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정진 작가의 개인전 <Unseen/Thing>을 감상하는 방식.
Ed. 7+3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외부 세계를 기록하는 사진의 일반적 특성에서 벗어나 대상과 마주한 순간에 발생하는 감각과 인식의 변화를 표현하는 작업으로 주목받는 사진작가 이정진의 개인전 <Unseen/Thing>이 4월 15일부터 5월 23일까지 PKM 갤러리에서 열립니다. 2000년대 초반 사물의 형상을 탐구한 시리즈 ‘Thing’과 아이슬란드 풍광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담은 신작 시리즈 ‘Unseen’을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사진은 읽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쓴 시라 생각하는 이정진 작가의 관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제게 작업은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스스로를 비워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결과인 작품보다 그 과정에서 하는 체험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작가에게 사진으로 명상과 수련하는 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Ed. 3+2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Ed. 7+3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이번 전시는 아이슬란드 풍광에서 출발한 최근작 <Unseen>과 2000년대 초반에 작업한 시리즈 <Thing>으로 구성되었습니다. 20여년의 간극이 있는 두 시리즈에서 어떤 차이를, 동시에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였나요?
이번 전시의 메인인 <Unseen>은 2024년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한편 <Thing> 시리즈는 약 20년 전에 한지 위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한 작업이죠. 제 작업 중 유일하게 스튜디오에서 사물을 다뤄 촬영한 형태입니다. 두 작업은 시간적으로도 약 20여년의 간극이 있고, 표현 방식에서도 매우 대조적인 영역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시리즈가 마치 옷의 안과 밖처럼, 결국 하나의 본질을 향하고 있다고 느껴요. <Unseen>이 미지의 풍경을 통해 자연 속에 감춰진 기운을 드러내는 작업이라면, <Thing>은 인간이 만든 사물과 일상의 오브제를 통해, 그 형상 자체를 넘어 삶을 읽어내는 통찰적인 시선을 제시합니다. <Thing>은 제 작업이 명상적 결과물로 나아가기 시작한 최초의 작업이었고, 그 방식이 자연스럽게 확장하고 발전해온 결과가 <Unseen>이라 생각합니다.
Ed. 3+2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Ed. 7+3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신작 <Unseen>의 작업에 대한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작업에 담긴 의도와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Unseen>은 몇 가지 서로 다른 방향성을 포함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하나는 제가 기존의 풍경 사진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명상적 은유를 담은, 내면적 풍경에 가까운 작업이라는 점이에요. 또 다른 하나는 사진적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축소함으로써 이미지의 추상성을 강조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검은 화산암과 그 위를 덮은 눈의 강한 대비를 통해, 마치 대지 위에 먹으로 그려낸 듯한 미니멀한 추상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특히 또 다른 하나라 언급한 작업은 앞으로 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Unseen> 작업을 하며 경험한 아이슬란드는 작가님에게 어떤 곳이라 느껴졌나요?
아이슬란드는 적어도 20년 전쯤에는 탐험했어야 할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그런 감각이 분명하게 다가왔어요.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하면서도, 이상하게도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는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애리조나나 네바다의 사막처럼 고요하게 명상적인 풍경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현재적이고 체험적인 장소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이슬란드의 풍경은 미국의 사막과 닮아있지만, 바다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매 순간 변화하는 날씨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공기의 극단적인 움직임이었어요. 그 변화 속에서 제 마음 역시 끊임없이 흔들렸고, 결국에는 모든 생각이 사라지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요. 그곳에서 저의 정신을 대상에 온전히 맡긴 채 풍경이 저를 통과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Ed. 3+2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Ed. 3+2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전통 한지에 감광 유제를 도포해 인화하는 아날로그 방식(<Thing> 시리즈)에서 디지털 프린트(<Unseen> 시리즈)로 방식을 옮겨왔음에도, 오랜 시간 수행하듯 탐구하는 작업의 방향은 그대로라 여겨집니다.
아날로그 작업을 약 20년을 하고, 디지털 프린트으로 방식을 바꾼 지 대략 15년 정도가 되었네요. 두 가지 방식은 굉장한 차이가 있어요. 아날로그는 결과물을 완벽히 컨트롤 할 수 없기에 될 때까지 무수히 반복을 하는 과정이라면, 디지털은 반대로 완벽함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내려놔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물론 수행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생각합니다. 디지털 역시 픽셀 하나하나를 만지는 수준으로 오랜 시간, 세밀하게 작업을 이어가기 때문이죠. 사실 수행이라고 표현하면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모든 작가의 작업 과정은 큰 틀에서 일종의 수행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명상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다만 일상에서 의식적으로 수행을 이어가기보다는 작업에 깊이 몰입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생각이 비워지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영역을 체험하는 것이 제게는 명상이지 않나 싶어요. 다시 말해, 따로 명상이라는 행위를 하기보다, 작업 과정 속에서 자아를 알아차리고 덜어내는 일이 명상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작업은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비워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그래는 저는 결과로서의 작품보다, 그 과정에서의 체험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꾸준히 작품을 통해 사진은 단순한 재현의 도구가 아닌 사유의 매체임을 드러내오셨어요. 일전의 인터뷰에서 “사진은 읽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사진이란 수단을 통해 시를 쓰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가 됩니다.
저는 늘 내가 하는 것이 과연 ‘사진’인지, 그리고 나는 ‘사진가’인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있어요. 제 작업은 외부 세계를 기록하기보다, 대상과 마주한 순간에 발생하는 내적 상태 즉, 감각과 인식의 변화를 드러내는 데 더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물은 사실의 재현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Unseen>은 아이슬란드 풍경을 재현한 사진이라기보다, 자연과의 마주침 속에서 이루어진 저의 주관적인 퍼포먼스이며,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쓴 하나의 시에 가깝자고 생각합니다.
Ed. 7+3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랜 시간 흑백 사진 작업을 이어온 작가님이 생각하는 ‘흑백’의 힘은 무엇인가요?
흑백의 톤은 대상을 재현하는 데에 머무르기보다 주관적인 감정과 그 감정의 밀도를 드러내는 데 있어 다른 색보다 더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흑백 안에서의 ‘흑’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모든 색을 집어삼킨, 미지의 심연과도 같은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깊이는 이미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감각과 감정을 열어두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흑백 사진은 보게 하기보다, 느끼게 하는 힘을 더 강하게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Unseen/Thing>
기간: 5월 23일까지
장소: PKM 갤러리(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