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옷을 겹쳐 입었을까? 긴 패션 역사 속에서 레이어드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추위를 피하기 위한 실용적 선택이거나, 빅토리아 시대에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겹겹이 쌓아 부와 권력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러나 시간이 흘러 레이어드는 개인의 취향과 감각을 드러내는 스타일링으로 변화했다. Y2K를 거치며 그 방식도 더욱 자유로워졌다.
VERSACE
이런 흐름 속에서 2026 봄 여름 시즌, 레이어드는 보조 장치를 넘어 한층 대담하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룩의 중심에 들어섰다. “패션은 즉각적인 언어”라는 미우치아 프라다의 말처럼 이번 시즌 레이어드 스타일은 각 하우스의 미학과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요소로 작동했다.
JILL SANDER
아미와 질 샌더는 노출을 통해 안쪽 레이어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컷아웃 니트 톱 사이로 드러난 골드 브라렛은 질 샌더의 미니멀한 룩 사이에서 강렬하게 반짝였고, 아미는 톱처럼 연출한 롱 코트 아래 카프리 팬츠를 매치해 세련된 감각을 드러냈다.
MIU MIU
MM6
미우미우와 MM6는 상반된 질감과 무드를 겹쳐 레이어드의 또 다른 방향을 보여줬다. 미우미우는 프릴 장식의 레더 에이프런으로 투박한 워크웨어에 위트 있는 반전을 더했고, MM6 또한 파스텔 톤의 브리프와 시어한 오간자 스커트, 러프한 레더 재킷을 레이어드해 대담한 룩을 선보였다.
LOEWE
PRADA
한편 프라다는 두 개의 드레스를 겹쳐 입체적 실루엣을 극대화하며 레이어드의 조형성을 강조했다. 샤넬은 스커트 위로 니트 브리프를 드러내는 하이엔드식 새깅(Sagging; 팬츠를 골반 아래로 입어 속옷이 보이는 스타일)으로 클래식 룩에 스트리트 감성을 더했다.
LII STUDIO
JULIE KEGLS
리와 로에베가 명료한 색의 레이어드로 경쾌한 분위기를 드러냈다면 줄리 케겔스는 플리츠 랩스커트를 느슨하게 레이어드해 계산된 어설픔이 주는 ‘긱 시크’ 묘미를 살렸다.
DIOR
이처럼 이번 시즌 런웨이는 레이어드라는 언어로 저마다 미학을 드러냈다. 투박함 속에 소녀스러운 반전을 즐기는 미우미우처럼 이번 시즌 레이어드는 단순히 옷을 겹쳐 입는 방식을 넘어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내는 언어가 됐다. 레이어드 스타일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겹겹이 쌓인 옷 사이로 각자의 개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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