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박동선 기자] K팝의 글로벌 영토 확장 속에서 '무엇이 가장 한국적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중의 귀를 사로잡는 음악의 형태가 다변화되는 가운데, 소셜채널과 엔터업계 전반에서는 극명하게 엇갈린 두 아티스트의 행보를 두고 '한국다움'에 대한 담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코첼라 무대에서 '한도초과', '날봐귀순' 등 트로트로 쾌거를 이룬 빅뱅 대성과, 한국의 혼 '아리랑'을 내걸고도 영어가 주를 이룬 곡으로 대중의 엇갈린 평가를 마주한 방탄소년단(BTS)의 사례가 그것이다. 표면적으로 대비되는 이 두 시선은 팽창하는 K팝 시장이 마주한 정체성의 딜레마와 산업적 과제를 동시에 던지는 트리거로 작용하고 있다.
◇'직관적 해학'과 '범용적 팝', 상반된 무기가 낳은 간극
대성이 코첼라에서 보여준 무대는 철저히 로컬에 머물러 있던 한국 특유의 뽕끼가 서구권 메가 페스티벌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복잡한 세계관이나 세련된 팝 사운드 대신, 트로트 특유의 직관적인 리듬과 키치(Kitsch)하고 유쾌한 에너지가 언어 장벽을 허물며 글로벌 팬들의 즉각적인 텐션을 이끌어냈다.
반면, 지난달 광화문 일대에 10만 인파를 집결시킨 BTS의 '아리랑' 컴백 라이브는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민족적 상징성을 띤 곡명에도 불구하고, 트랙 대다수를 영어로 채우며 철저히 글로벌 팝의 문법을 차용했다. 이는 K팝의 언어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인이 공명할 수 있는 보편적 장르로 다가가려는 기획사의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대중적 시선에서는 "과연 이것을 아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합당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의 원형을 살려 무기로 삼은 대성과, '가장 세계적인 것'을 위해 한국적 서사를 휘발시킨 BTS의 행보는 대중이 기대하는 전통의 보존과 기획사가 그리는 시장 확장 사이의 깊은 괴리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제된 프레임'과 '정체성 상실' 사이의 줄타기
대중이 체감하는 이 깊은 괴리감은 곧 산업 생태계가 풀어야 할 치열한 딜레마이자, 현시점 기획사들이 맞닥뜨린 양면적 리스크로 직결된다.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한 축은 시장의 변화를 역행하는 낡은 프레임이다. 국악기 세션이나 한글 가사라는 물리적 잣대로만 정체성을 규정하려 든다면, 다변화된 글로벌 팬덤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파이를 키워야 하는 엔터사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해 K팝 고유의 기초체력인 '한국적 색채'를 희석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BTS의 '아리랑'을 향한 일각의 차가운 시선은, 곡의 본질이 한국적일지라도 대중이 체감하는 언어적·정서적 질감이 서구화되었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이 적지 않음을 증명한다. 글로벌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타협한 보편성이 자칫 K팝만의 차별화된 매력을 잃게 만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무작정 낡은 틀에 갇히는 것과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 이 두 가지 함정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일은 향후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우리 엔터 산업이 확보할 수 있는 잠재적 파이의 크기를 명확히 가늠케 한다.
◇'본질'은 지키고 '형식'은 열어두는 영리한 변주 필요
결국 이 시대의 아리랑은 과거의 악보에만 갇혀 있어서도, 무작정 서구의 문법을 추종하며 뿌리를 단절해서도 안 된다. K-인프라라는 정교한 시스템 안에서 대성의 트로트가 보여준 로컬의 힘과 BTS가 시도한 글로벌 팝의 확장성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느냐가 관건이다. 대중적 저항감을 최소화하면서도 세계인의 정서적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 영리한 변주가 절실한 시점이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전통은 진열장 안에 갇혀서도 안 되지만, 본질을 잃은 무분별한 세계화 역시 대중의 온전한 공감을 얻기 힘들다"며 "로컬의 진정성과 글로벌의 보편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내는 것이 지금 K팝의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러한 정체성 논쟁은 비단 음악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K팝 시스템을 이식한 현지화 그룹의 연이은 등장부터 버추얼·드라마 등 전방위적인 'K-컬처의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화'가 가속화되며 "무엇이 K-컬처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쏟아지는 추세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껍데기보다 정교한 K-시스템의 코어를 쥐고, 그 위에 글로벌 보편성을 입혀 전 세계의 일상에 납득시키는 치열한 생존의 궤적이 현시점 K컬처 생태계가 증명해 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지목된다.
뉴스컬처 박동선 dspark@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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