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분위기를 구축한 인물은 영화 ‘노이즈’ 등에서 감각적인 작업을 선보였던 고승효 미술감독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공간 연출 경험을 쌓아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공간 자체가 공포가 되는 순간’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고 감독은 “시나리오에 축약된 공간을 인물의 서사와 결합해 하나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것이 미술감독의 역할”이라며 “‘살목지’에서는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이야기까지 이끄는 존재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광활한 공간 속에 서 있는데도 오히려 고립된 느낌이 드는, 그 역설적인 감각이 ‘살목지’ 공포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며 “관객이 점점 조여 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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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기보다, 고요한 공간”… ‘살목지’ 첫 인상
영화의 주요 배경인 ‘살목지’는 이름과 달리 과장된 공포보다는 적막함이 먼저 느껴지는 공간이다. 고 감독은 “처음 답사를 갔을 때 예상보다 덜 무서웠고, 오히려 조용한 분위기가 더 인상적이었다”며 “넓은 저수지와 버드나무가 주는 고요함 속에서 공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설정 덕분에 관객도 자연스럽게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같은 공간을 계속 맴도는 듯한 구조와 미묘한 변화가 반복되면서 방향을 잃은 듯한 감각이 쌓인다. 그는 “관객이 ‘여기가 같은 곳인가?’라고 느끼는 순간이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속 돌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장치다. 고 감독은 “왜 이렇게까지 돌탑을 쌓았을까, 어떤 염원이 있었을까를 계속 고민했다”며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 이야기가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길 바랐다”고 말했다.
제작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촬영을 위해 돌탑은 실제로 쌓으면서도 구조적으로 안전해야 했고, 동시에 인위적인 느낌을 지워야 했다. 그는 “돌을 전문적으로 쌓는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며 “자료 조사와 함께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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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서 아이 귀신 목격… 둘씩 짝지어 다녀”
‘살목지’의 공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물과 습지라는 환경을 활용해 관객이 화면을 보면서도 축축하고 끈적한 감각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고 감독은 “보는 공포를 넘어, 몸으로 느껴지는 공포를 만들고 싶었다”며 “관객이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물속 수초를 머리카락처럼 보이도록 연출하거나, 실제 고스트 헌터들이 사용하는 장비를 참고해 고스트박스와 모션 디텍터 등을 구현하는 등 디테일에도 공을 들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영화 전반에 깔린 음산한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다.
특히 수중 장면은 이러한 시도의 정점이었다. 물속이라는 제약된 환경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공포를 구현해야 했고, 이는 제작진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고 감독은 “자유롭게 세팅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얼마나 밀도 있게 공간을 채울 것인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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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의 집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계됐다. 단순한 신당이 아닌, 개인의 집착과 결핍이 스며든 공간으로 설정해 보이지 않는 감정을 시각화했다.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설명되지 않은 감정이 쌓일수록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촬영 현장에서는 기묘한 경험도 있었다. 고 감독은 “돌탑 촬영 당시 팀원들이 흰 옷을 입은 아이를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비슷한 얘기가 이어지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무서워서 스태프끼리 항상 둘씩 짝지어 다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끝으로 고 감독은 “공포영화는 설정 자체는 허구일 수 있지만, 그 감정만큼은 관객에게 실제처럼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 공간이 계속 떠오른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이나 수중 장면은 큰 화면에서 봐야 공간의 느낌이 제대로 살아난다”며 “극장에서 그 공간을 직접 경험해보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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