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도시의 속도가 빠르게 바뀌는 만큼, 삶의 결도 끊임없이 덧칠된다. 366번째 여정을 맞은 KBS1 ‘동네 한 바퀴’는 산업도시의 상징이자 서해안 최장 해안선을 품은 경기도 안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간척지 위에 새겨진 시간, 그리고 국경을 넘어 모여든 이웃들의 일상이 한 도시 안에서 교차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바람을 가르는 시작, 대부도의 초록 회랑
대부바다향기테마파크에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길은 바다를 메워 만든 땅 위에 또 하나의 시간을 세운 공간이다. 3.5km 구간을 따라 이어진 나무 1,200그루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며, 인간의 개발과 자연의 회복이 공존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동네지기 이만기는 자전거에 올라 봄바람과 함께 대부도의 풍경을 가로지른다.
■국경이 사라진 거리, 다문화 마을의 하루
공단을 따라 형성된 이 지역은 이제 전국 최초의 다문화 특구로 자리 잡았다. 거리에는 100여 개국의 언어와 향신료가 뒤섞이며 또 다른 세계를 형성한다.
중국식 꽈배기 ‘마화’는 팔뚝만 한 크기로 시선을 끌고, 고소한 소스와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량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미각을 자극한다. 이곳은 단순한 음식 거리를 넘어, 국경 없이 섞여 살아가는 일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자바섬에서 안산까지, 한 식당에 담긴 시간
다문화 거리 한편에는 인도네시아의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작은 식당이 있다. 섬유공장 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온 뒤,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정착한 율리 씨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매콤하게 볶아낸 ‘나시고랭’과 향신료를 더해 구운 닭요리 ‘아얌 바카르’에는 고향을 향한 기억과 이국 땅에서 쌓아 올린 삶이 동시에 녹아 있다. 음식은 단순한 한 끼를 넘어, 삶의 방향을 붙잡아준 언어처럼 기능한다.
■하늘 위 놀이, 선부광장의 연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선부광장은 주민들의 쉼과 일상이 교차하는 열린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직접 만든 전통 방패연이 하늘을 가르며 움직인다.
연줄 하나로 바람을 제어하는 장면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세대를 잇는 기억의 한 조각처럼 이어진다. 동네지기 이만기는 어린 시절의 감각을 떠올리며 잠시 시선을 하늘에 맡긴다.
■불꽃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 유리 작업의 현장
대부도 남쪽에 위치한 유리 예술 공간은 과거 염전 부지를 재생해 만든 창작의 무대다. 1,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녹아내린 유리는 전혀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김홍도의 회화를 재해석한 작품부터 추상적인 조형물까지, 유리는 고정된 재료가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로 확장된다. 관람객은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해 하나뿐인 결과물을 완성할 수도 있다.
■바다의 시간을 지켜낸 방식, 흘곶마을 독살
밀물과 썰물의 흐름을 이용해 물고기를 가두는 전통 어법 ‘독살’은 한때 사라졌던 방식이다. 하지만 흘곶마을 주민들은 공동의 힘으로 이를 다시 복원했다.
현재 독살은 어업을 넘어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며 아이들과 방문객들에게 살아 있는 생태 학습장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자연산 광어와 함께 갓굴을 넣어 끓인 칼칼한 칼국수가 서해의 계절을 전한다.
■100년을 이어온 무대, 동춘서커스의 현재
1925년 창단 이후 한 세기를 넘어선 동춘서커스는 한국 공연예술의 오래된 뿌리다. 한때 전국을 순회하던 유랑 무대는 지금 대부도 상설 공연장에서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위기를 넘어 극단을 지켜낸 단장의 선택과 배우들의 집념은, 한 시대의 공연 예술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안산은 빠르게 변해온 산업의 얼굴과 이주민의 삶, 그리고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지형적 특성이 한데 겹쳐진 공간이다.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도시 위에서 이어지며, 또 다른 내일을 만들어간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