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충북 괴산의 산줄기는 겹겹이 이어진 능선과 계곡이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속리산국립공원 북쪽에 자리한 도명산은 이름 그대로 ‘도를 깨닫는 산’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어, 걸음을 옮길수록 마음의 속도까지 함께 느려지는 곳이다. 10년째 러닝과 산행을 함께 이어온 송찬석·최희수 부부가 이 길 위에 섰다.
산행에 앞서 발걸음이 먼저 닿은 곳은 성불산자연휴양림이다. 아직 완전히 봄이 자리 잡지 않은 시기지만 숲은 이미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 듯 분주하다. 산수유와 홍매화가 가장 먼저 색을 드러내고, 우리나라 고유종인 미선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며 숲의 공기를 바꾼다. ‘슬픔을 잊게 한다’는 꽃말처럼,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결이 정돈되는 공간이다.
이어진 화양구곡에서는 흐름이 완전히 달라진다. 겨울을 지나 깨어난 계곡물은 맑고 빠르게 흐르고, 그 주변으로 연한 초록이 번지기 시작한다. 부부는 이 구간을 걷기보다 달리는 방식으로 지나며 몸과 자연의 리듬을 맞춘다. 10여 년 동안 이어온 러닝 습관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자연과 교감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 위에서 호흡은 점점 일정해지고, 풍경과 움직임이 하나로 이어진다.
화양구곡 제8곡 학소대는 도명산으로 향하는 실제 출발점이 된다. 이곳부터는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며, 가령산과 무영봉, 낙영산, 도명산을 잇는 종주 코스의 일부로 ‘가·무·낙·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산과 자연을 즐기며 도를 깨닫는다는 의미가 담긴 이 길은 단순한 등산로를 넘어선 상징적인 공간이다. 숲은 점점 깊어지고 발밑에는 마른 낙엽과 새순이 함께 존재하며 계절의 경계가 겹겹이 쌓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풍경은 점점 입체적으로 변한다. 거대한 기암괴석이 산세를 이루고, 소나무는 바위 틈에서 뿌리를 내리며 강인한 생명력을 드러낸다. 길은 단순한 오르막이 아니라 바위와 숲, 사람의 호흡이 동시에 맞물리는 공간으로 바뀐다. 코끼리 형상을 닮은 바위를 지나며 서로를 격려하는 발걸음은 점점 더 무게를 더해간다.
산 중턱에서는 높이 약 30미터의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상군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 암반 위에 조각된 불상은 오랜 시간 동안 바람과 햇살을 견디며 자리를 지켜왔다. 아래쪽에서는 마르지 않는 석간수가 흐르고, 이 물길은 이곳이 단순한 산이 아닌 오래된 신앙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의 시간이 겹쳐지는 지점이다.
정상에 이르자 풍경은 조용히 열린다. 화려함보다 안정감이 앞서는 능선 위에서 소나무와 바위가 균형을 이루고, 멀리 속리산국립공원의 능선이 이어진다. 부부는 이곳에서 긴 산행의 호흡을 잠시 멈추고 서로의 시간을 되짚는다. 함께 걸어온 세월처럼 단단한 풍경 앞에서 말보다 긴 침묵이 먼저 자리한다.
여정은 충북 괴산 화양구곡 입구에서 시작해 운영담과 학소대를 거쳐 도명산 정상과 공림사로 이어지는 약 10.2km 구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산행은 약 6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KBS2 ‘영상앨범 산’ 1036회는 19일 부부의 도명산 여정을 따라가며 자연과 사람, 그리고 시간이 맞물리는 풍경을 전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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