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생루이 광장에 위치한 뱅센성 내부, 초록색 체크 패턴으로 둘러싸인 정육면체 공간에서 로에베의 2026 F/W 컬렉션이 공개되었다. 밝은 노란색 바닥에 놓인 화이트 큐브 형태 체어 위에 소라게, 조개, 강아지 조형물을 배치해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는 독일 아티스트 코시마 폰 보닌의 작업에서 비롯된 요소로, 쇼 공간과 컬렉션 전반에서 위트를 느낄 수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는 로에베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컬렉션을 통해 창작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그들에게 ‘만드는 행위’는 결과보다 과정에 가깝다. 기쁨과 호기심에서 출발한 제작 과정은 장난기와 실험, 그리고 장인 기술이 교차하는 지적 탐구의 장이 되었다. 잭 맥콜로는 “우리는 장인정신의 한계를 넘어 그것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을 찾는 데 큰 의미를 둡니다. 손과 기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죠”라고 설명했다. 라자로 에르난데스 역시 “뭔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 바로 그 디자인의 기쁨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컬렉션의 실루엣은 중력과 소재, 그리고 인식의 경계를 유희적으로 탐색했다. 오프닝에 등장한 레이스와 리본 장식 슬립 드레스는 란제리 모티브에서 출발했지만, 3D 프린팅 구조에 광택과 점성을 지닌 라텍스를 입히며 전혀 다른 물성을 만들어냈다. 코트 역시 소매와 포켓, 여밈 장치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요소를 몰딩해 라텍스에 트롱프뢰유 효과를 구현하며 조각적 구조를 완성했다. 일부 아이템은 액체처럼 흐르던 텍스처가 굳어가는 순간을 포착한 듯 보였고, 또 다른 아이템은 공기를 머금은 듯 부풀어 오른 형태를 드러냈다.
소재 실험 또한 두드러졌다. 레이저 커팅과 본딩 공정을 통해 제작한 파카와 스카프는 공기층을 품은 볼륨감을 형성했고, 래커 처리한 가죽으로 만든 루프 코트와 초극세 가죽 원사로 편직한 니트웨어는 하우스 특유의 공예적 접근을 보여줬다. 시어링과 코듀로이 소재에는 그러데이션 트리밍을 적용해 예상치 못한 텍스처의 변화를 더했다. 코시마 폰 보닌의 작업은 컬렉션 곳곳에 흥미로운 흔적을 남겼다. 그녀가 그린 플로럴과 깅엄 패턴은 룩의 안감과 라텍스 표면에 등장했고, 개와 갑각류 형태의 조각 동물은 미니백과 참 장식으로 재해석되었다. 이러한 디테일은 레디투웨어와 액세서리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였다. 올해 창립 180주년을 맞아 아마조나 180 백도 함께 선보였다. 개와 게 모양 참 장식을 더한 백은 더플백 형태로도 확장되었다. 또 다른 하우스 아이콘인 플라멩코 클러치백은 블루와 화이트 모자이크에서 영감받은 인타르시아 가죽 마케트리 기법으로 재해석되었고, 새롭게 공개된 위스커 백은 구조적 상단과 유연하게 흐르는 보디라인이 대비를 이루며 우아한 실루엣을 드러냈다. 유머와 위트, 그리고 공예에 대한 집요한 탐구 과정 자체가 하나의 창의적 놀이처럼 펼쳐진 실험적 시도와 흥미로운 내러티브, 위시 리스트를 업데이트하게 만드는 아이템까지 갖춘 크리에이티브 듀오의 성공적 행보. 로에베의 다음 챕터를 기대하게 만드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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