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박정희식 한글전용, 문맹 없앴지만 난독증은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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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 박정희식 한글전용, 문맹 없앴지만 난독증은 키웠다

연합뉴스 2026-04-17 08:2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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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에게 한자 교육을 초등생에게 한자 교육을

2016년 11월 30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표기 방안 연구진' 주관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한자 표기 찬성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67년 10월 9일 한글날,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국어운동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고려대에서 '한글 전용 추진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유인물을 배포하며 교문 밖으로 나서려 했으나 경찰에 제지됐고, 이 사건은 '해산된 한글전용'이란 제목으로 한 일간지에 실렸다. 기사를 접한 박정희는 문화정책 특보인 시인 이은상을 청와대로 불렀다.

이은상은 대뜸 "누구를 존경하느냐"고 물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라는 답에 그는 "두 분을 제대로 알려면 세종실록과 난중일기를 읽어야 하는데, 한문이라 국민이 읽지 못한다. 한글 전용을 시행해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제언했다. 고개를 끄덕인 박정희는 한글학회 이사 한갑수가 마련한 '한글전용 5개년 계획안'을 보고받은 뒤 3년 안에 시행할 것을 내각에 지시했다.

이듬해 발표된 '한글전용 촉진 7개항'은 혁명적이었다. 1970년부터 모든 공문서를 한글로 작성하고 각급 교과서에서 한자를 삭제한다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교육용 한자 1,300자도 폐지했다. 1968년 12월엔 6·25 전쟁 중 소실된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박정희가 직접 쓴 한글 현판을 달았다.

한글전용 정책은 순탄하지 않았다. 한자 폐지와 별개로 한자 교육의 필요성이 학계와 언론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1971년 초등학교 한자교육이 재개됐고, 1972년에는 중·고교용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가 제정돼 한문 교과가 부활했다. 이후로도 한글전용파와 한자혼용파의 충돌은 반복됐지만, 공문서와 교과서에서 한자가 밀려나는 흐름은 되돌릴 수 없었다.

1968년 복원된 광화문에 걸린 박정희 친필 현판 1968년 복원된 광화문에 걸린 박정희 친필 현판

1968년 12월 11일, 광화문 복원 준공식이 거행됐다.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광화문이 그 우람한 원모습을 나타냈다. 번영하는 자주국가로서의 자세를 굳건히 하려는 우리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국가기록원 자료]

수십 년의 우여곡절 끝에 한글은 일상과 공적 언어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성취의 이면에서 다른 균열이 자라났다. 한자혼용파가 우려했던 문해력 붕괴다. 문맹을 없애는 데 성공한 박정희식 속도전이 역설적으로 '읽되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문맹을 낳은 것이다. 우리말 어휘의 상당수가 한자어인데 그 뿌리를 배우지 않으니, '금일'을 '금요일'로 오해하는 식의 혼동이 일상이 됐다.

이런 위기감 속에 국가교육위원회가 문해력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교과서 한자 병기 재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찬반 양측을 함께 앉힌 구성 자체가 이 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논쟁임을 보여준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도 같은 시도가 있었지만 현장 반발에 막혔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자병기가 도입되더라도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 한자 교육을 암기 과목으로 보는 시각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동음이의어로 인한 혼선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한자의 개념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수준을 높이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박정희가 한글 전용으로 지식 접근의 벽을 무너트렸다면 이제는 그 지식의 질을 회복해 끌어올릴 때다. 한글이라는 그릇에 한자라는 깊이를 담을 때 우리말은 눈으로 읽는 언어를 넘어 머리로 이해하는 언어가 될 것이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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