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응급의료 공백이 개별 병원의 과실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최근 소아 응급환자 사망 사건에서 병원의 진료 거부 책임이 인정된 데 이어, 의료 인력 부족을 이유로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이 반납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단일 병원의 판단 문제가 아닌, 인력·배후진료·전달체계 전반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현장 수요 구조가 정책 전제와 어긋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16일 남부대 간호학과와 상무병원 간호부 연구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소병원 응급실 내원 환자 중 90% 이상이 비응급 환자인 반면, 중증 환자 비중은 1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진 없이 귀가하는 환자 비율도 97%를 넘는 수준이다.
경증 환자가 응급실 자원을 상당 부분 점유하는 가운데, 정작 중증 환자는 수용 병원을 찾지 못해 이송이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야간·주말 외래 공백과 1차 의료 접근성 한계로 경증 환자가 응급실로 유입되는 구조가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해석된다. 중증 환자를 수용할 병상과 전문 인력이 부족, 병원 간 전원이 지연되면서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병상이나 기관 수를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다. 실제 현장에서는 중증 환자를 최종적으로 치료할 배후진료 체계가 부족해 환자 수용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병원이 부족하다기보다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이 제한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응급의료 인프라 확충과 이송 체계 개선을 중심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를 현재 44곳에서 최대 60여곳까지 확대하고, 재지정 평가를 강화해 중증 대응 역량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광역상황실 인력을 늘려 이송과 전원 기능을 통합 관리하고,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정책 방향과 실제 운영 환경 사이 간극이 크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방 근무 기피와 전담의 부족으로 기존 응급실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관 수 확대만으로는 실질적인 대응 역량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응급의료기관 지정 자체를 반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강원 동해권의 한 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담의가 기존 4명에서 1명으로 줄어든 이후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24시간 당직 체계를 유지하지 못해 결국 응급실 운영을 중단. 인력과 배후진료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형만 확장될 경우 오히려 공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응급의료 전달체계의 비효율도 문제로 지목된다. 병원 간 환자 배분과 조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동일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에서 도입된 이송결정위원회처럼 별도의 조정 장치가 있을 때 수용 병원을 신속히 결정할 수 있지만, 상시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 예외적 개입에 가까운 구조라는 평가도 나온다.
의료 현장의 규제와 절차도 운영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도입이 확대되고 있는 의료 AI의 경우 판독 시간은 수분 내외로 짧지만, 환자에게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반복된다. 이에 행정 부담이 증가와 응급 상황 시 활용이 제한되는 사례도 확인.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동의 절차 부담으로 도입을 포기하거나, 활용 범위를 제한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지역의사제 도입(2027년)과 공공의대 설립(2029년),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 중장기적 전략을 통해 인력과 재정 기반을 확충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인력 기반을 단계적으로 확충해 나갈 계획”이라며 “응급의료 전 단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단기적으로는 현장의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실은 결국 중증 환자를 받아 최종 치료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핵심”이라면서 “현재는 배후진료가 받쳐주지 못해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관 수를 늘리는 것보다 환자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정부가 수용 가능 병상과 배후진료를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데 정책의 초점을 옮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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