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영웅은 없다”…‘21세기 무관’ 무예인문학자가 쓴 이순신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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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영웅은 없다”…‘21세기 무관’ 무예인문학자가 쓴 이순신의 시간

경기일보 2026-04-15 17:51: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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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진화하는 장수, 충무공 이순신’. 민속원 펴냄
도서 ‘진화하는 장수, 충무공 이순신’. 민속원 펴냄

 

다가오는 4월28일은 이순신 장군의 탄신 481주년이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불패의 영웅’으로 불린다. 조선군을 승리로 이끈 이 난세의 영웅은 처음부터 완성된 장수였을까.

 

신간 ‘진화하는 장수, 충무공 이순신’(민속원 펴냄)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 최형국(51)은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 상임 연출가이자 한국전통무예연구소 소장이다. ‘무예도보통지’를 번역하고, ‘정조의 무예사상과 장용영’(2015) 등 10여 권의 저서와 40여 편의 군사사 및 무예사 논문을 발표한 역사학 박사이기도 하다. 연구실을 넘어 무대와 현장에서 역사를 복원해온 그는 이순신을 ‘결과로써의 영웅’이 아닌 ‘과정에서 형성된 장수’로 바라본다.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임진왜란의 명량과 한산도가 아니라, 이순신이 처음 군문에 들어선 북방 변방으로 시선을 돌린다. 종9품 무관으로 부임한 ‘동구비보’(蕫仇非堡). 이름만 남아 있을 뿐 정확한 위치조차 불분명했던 이 공간을 저자는 사료와 지도, 위성 자료를 교차 검증해 구체적으로 짚어냈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첫 부임지가 정확히 어딘지는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한다”라며 그의 ‘출발점’부터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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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첫 부임지 ‘동구비보’ 위치도. 압록강·장진강·허천강이 만나는 삼수 일대의 험지로, 사료와 지도를 통해 세부 위치가 복원됐다. 저자 제공,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그가 복원해 낸 것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여진족과 맞섰던 북방 전투, 발포 수군만호 시절 바다를 익혀가던 과정,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섬이 아닌 녹둔도까지. 이순신이 어떻게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는지를 공간과 경험의 축적 속에서 따라간다.

 

이러한 시선은 저자의 이력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조선시대 군사 훈련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무예24기를 30여 년간 수련하고, 이를 현대 무대에서 재현해 온 연출가다. 정조의 명으로 1790년 편찬된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장용영 군사들이 무예를 익혔듯, 오늘날 무예24기 시범단 역시 화성행궁을 배경으로 민족의 기상이 담긴 무예 시연을 펼치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몸으로 익힌 전투 감각과 지휘의 감각은 자연스럽게 이순신에 관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무관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은 기록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직접 몸으로 느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표현했다.

 

책 속 이순신은 단순한 전략가가 아니라, 군령을 세우고 병사를 이끌어야 했던 ‘지휘관의 인간적 고뇌’를 함께 품은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해석은 정조의 시선과도 맞닿는다.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친위 부대 ‘장용영’을 창설하고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군사 질서를 재편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이상적인 장수의 표상으로 불러낸 인물이 이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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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진 위치도(대동여지도). 전라좌수영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이순신이 조선의 바다를 처음 익힌 전략 요충지다. 저자 제공,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저자는 “부국강병을 꿈꾸는 한편, 여러 정치적 상황에 놓였던 정조는 이순신처럼 나라에 헌신하는 장수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정조가 그를 영의정으로 추증하고 직접 신도비문을 남긴 것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간형’을 세우려는 시도로 읽힌다.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저자의 개인적 체험이다. 집필 과정에서 그는 어머니를 잃는 아픔의 시간을 보냈다. 저자는 “난중일기를 보며, 그 슬픔이 더 실감됐다”며 백의종군 시절 어머니를 떠나보낸 이순신에게 깊은 공감을 느꼈다고 했다.

 

관직을 잃고 평군으로 전장에 나섰던 시간, 장례를 채 마치기도 전에 다시 싸움터로 향해야 했던 순간들. 저자는 이를 ‘한 인간의 감정’으로 읽어낸다. 동시에 지휘관으로서 부하를 전장에 내보내야 하는 고통 역시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전투 기록과 전략 분석에 머물지 않는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순신이 어떻게 ‘기억되고 재구성됐는지’까지 통시적으로 추적한다.

 

저자는 지금 시대에도 이순신의 의미는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세계는 여전히 갈등과 전쟁 속에 있고, 우리는 정전 상태에 살고 있다. 이순신의 마음은 이 땅이 존재하는 한 계속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책은 이처럼 완벽해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단련했기에 위대한 장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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