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아몬드’로 잘 알려진 손원평(47) 작가가 포착한 우리 시대의 풍경은 삭막함과 외로움이 뒤엉킨 모습이었다. 선의의 가면 뒤에 숨은 냉혹한 진실, 악의없는 말이 칼날로 되돌아오는 현실의 아이러니. 그가 최근 펴낸 신작 소설집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창비)는 이런 장면들을 담아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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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하고 외로운 세상 담은 10개 단편
2021년 첫 소설집 ‘타인의 집’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모자이크’ 등 10개의 단편을 통해 의도치 않게 타인을 상처 입히게 되는 일상의 균열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 작가는 “무심코 건넨 말이 타인의 하루를 어떻게 흔드는지 돌아보게 된다면, 서로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한 번쯤 이런 사실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손 작가는 서른 후반에 장편소설 ‘아몬드’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국내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 번역·출간됐다. 이후 ‘서른의 반격’, ‘프리즘’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작품 세계를 확장해왔다.
이번 소설집에는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서 흔들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당신의 손끝’은 문화센터 미술 강사 ‘효원’과 부유한 수강생 ‘주영’을 통해 신뢰로 이어진 듯했던 관계가 상대의 이중적인 태도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을 그린다. ‘딸과 깍 사이’는 마우스 클릭 소리 ‘딸’과 ‘깍’ 한 번으로 희망퇴직이 통보되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의 단면을 드러낸다.
손 작가는 “내 집 마련처럼 평범했던 꿈들이 이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일이 됐다”며 “불안해도 자기 자신을 탐구하며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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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시대 속 소설을 통해 용기 전할 것”
작품은 ‘꿈의 좌절’을 다루면서도 그 너머의 희망에 주목한다. 그는 “소박한 꿈이 좌절됐을 때 마음에는 삭막함만 남는다”면서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과정에서 스스로 마음을 회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처에 머물기보다 다시 삶을 이어가려는 인물들을 그려낸 이유다.
손 작가가 일상의 순간을 이토록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는 건 사람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 덕분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며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인데 왜 서로 이해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품고 살다 보니 다양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목소리를 쓰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의 작품은 어린이부터 성인 독자까지 폭넓은 층을 아우른다. 등단 전부터 품어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집필한 동화 ‘위풍당당 여우꼬리’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시리즈 7권을 집필 중이며 연내 출간이 목표다. “어린 시절 독서의 즐거움을 경험해야 성인이 돼도 책과 멀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손 작가는 “어린 시절의 독서는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같다”면서 “한동안 멈추더라도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독서의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구미호 꼬리가 아홉 개니 ‘위풍당당 여우꼬리’도 9권까지는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에게 문학은 익숙한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렌즈다. 손 작가는 “자극이 넘쳐나는 ‘도파민 시대’(즉각적인 쾌락을 좇는 시대)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건 소설밖에 남지 않았다”며 “소설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적인 용기’를 전하고 싶다. 다 읽고 난 뒤 ‘살아볼 만 하다’는 마음이 남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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