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자 유통·식음료업계가 일제히 ‘초저가’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990원짜리 소주와 즉석밥부터 반값 우유까지 등장하며 서민들의 부담을 낮춘 마케팅이 업계 핵심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14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8.80(2020년=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하며 3개월 만에 가장 큰 오름폭을 기록했다. 특히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 유가 급등과 고환율 여파로 석유류 가격이 10% 가까이 치솟았고, 곡물(12.3%), 축산(6.2%), 수산(4.4%) 등 주요 먹거리 가격 상승세도 가팔랐다.
내수 경기 침체와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유통업체들이 자체 브랜드(PB)를 앞세워 앞다퉈 초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오는 21일부터 시작하는 ‘쟁여위크’ 행사를 통해 자체브랜드(PB) ‘득템’ 시리즈 즉석밥을 파격가에 선보인다. 번들(8입) 구매 시 흰쌀밥은 개당 990원, 현미밥은 개당 1300원에 판매한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지난달 1500원 균일가로 PB ‘혜자로운 디저트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GS25에서 취급하는 유사 상품군 중 최저가 수준으로 출시 한 달여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개를 돌파했다.
대형마트의 파격 할인 공세도 매섭다. 롯데마트는 29일까지 3주간 대규모 할인 행사인 ‘PB 페스타’를 열고 ‘오늘좋은 데일리우유(1L)’를 수입 멸균우유 수준인 1880원에 판매한다. 여기에 500원짜리 씬 크래커와 초코우유, 1000원짜리 3겹 미용 티슈 등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생필품을 내놨다.
이마트는 김밥 두 줄에 3980원인 ‘반전가격 3980 두줄김밥’을 출시했다. 시중의 반값 수준으로 가격을 낮췄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서울 지역의 김밥 평균 가격은 1줄에 3800원이다.
밀가루 등 원재료비 영향으로 빵값이 상승하자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도 크기를 줄인 가성비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파리바게뜨가 최근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는 ‘한입 브레드’가 대표적이다. 1000원 안팎의 미니 빵과 2000원대 초반의 샌드위치 등 주머니 부담 없이 가볍게 여러 개를 집어들 수 있는 실속형 메뉴를 확대하며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외식업계에서도 가성비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노브랜드 버거가 최근 내놓은 ‘어메이징 불고기’는 단품 가격이 2500원으로 업계 최저가 수준이다. 앞서 주류업계에서는 선양소주가 병당 990원짜리 ‘착한소주 990’을 선보였다. 360㎖, 16도 소주를 병당 990원에 990만병만 한정 판매했다.
이런 ‘가격 파괴’ 행보는 극심한 소비 침체를 방어하기 위한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이다. 유가와 환율 동반 상승으로 물가 부담이 가중되자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히고 있어서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요소가 가격이라는 점을 정조준해 일부 품목의 가격을 한계점까지 낮춰 브랜드 주목도와 집객 효과를 동시에 챙기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불황기에는 광고보다 가격이 더 강력한 마케팅”이라며 “PB 상품과 초저가 전략이 당분간 유통가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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