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보머' 테드 카진스키 다룬 책 '살인자의 정신' 출간
1950∼1960년대 미국 사회와 하버드 교육 등 지적 배경에 초점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1996년 미국 몬태나의 한 숲속 오두막에서 홀로 살던 50대 남성이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모두 16차례의 우편물 폭탄으로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을 다치게 한 테드 카진스키였다.
주된 테러 타깃이던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의 앞글자를 따 '유나보머'(unabomber)로 불렸던 카진스키의 이야기는 미국 밖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16세에 하버드대에 입학하고, 24세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수학 교수로 임명됐던 '수학 천재'의 극적인 추락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내기 충분했던 데다 그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언론사에 보낸 3만5천 단어 분량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가 이미 큰 반향을 불러온 상황이었다.
그가 2023년 수감 중 81세의 나이로 숨질 때까지 그를 소재로 한 책과 영화, 다큐멘터리도 여러 편 제작됐다.
미국 철학자 올스턴 체이스가 쓴 '살인자의 정신'(원제 'A Mind for Murder')도 카진스키를 다룬 책들 중 하나지만 성격은 좀 다르다.
카진스키의 범죄 행적이나 수사 과정을 다룬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미국이 낳은 가장 지적인 연쇄살인범"으로 불린 카진스키를 폭탄 테러로 이끈 지적 배경에 주목한 책이다.
저자는 카진스키와 꽤 비슷한 인생 경로를 거쳤다. 둘 다 공립학교를 나와 하버드에 들어갔고, 1960년대 대학원에서 조교를 한 후 교수가 됐으며, 비슷한 시기 학계를 떠나 몬태나의 야생으로 들어갔다.
굉장한 우연은 아니었다. 범죄로 돌아서기 전까지 카진스키의 삶은 여러 면에서 그의 세대를 대표하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가 야생으로 돌아갈 무렵엔 전국적으로 '땅으로 돌아가기' 운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미국의 '위대한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 사이 이른바 '침묵세대'인 1942년생 카진스키는 또래가 그랬듯 냉전의 침울하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내향적으로 자랐다.
하버드라는 공간도 그가 테러범이 되는 데 '토양'을 제공했다. 그가 입학하던 무렵의 하버드는 그간 신봉해온 '이성의 종교'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던 상황이었고, 인문주의와 실증주의의 갈등 속에 하버드 전반에 '절망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배경은 카진스키와 비슷한 시기 명문대를 다닌 미국인들이 모두 공유하는 것들이라면 카진스키만 겪은 특별한 사건도 있었다. 바로 하버드대 재학 시절 카진스키가 참여한 심리학 실험이었다.
카진스키는 헨리 머리 교수가 지휘한 '재능 있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인성 발달에 대한 다중적 접근'이라는 이름의 실험에 다른 20여 명의 학부생과 함께 참여했는데 장기간 이어진 실험에서 그는 "격렬하고 모멸적인" 공격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가령 학생들에게 개인적인 철학을 적어내라고 한 뒤 능숙한 변호사가 그 삶의 철학을 맹렬히 공격하도록 하는 식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도 연계된 이 실험은 카진스키에게 오랫동안 불쾌한 감정을 남겼고, 이러한 심리적 압박이 그의 반사회성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2년간의 취재로 머리의 심리 실험에 대해 처음으로 심층 조명한 저자는 카진스키의 범행이 특이한 개인의 돌출 행동이 아니라 미국 사회와 학계의 분위기, 잔혹한 실험 등이 그의 명석한 두뇌와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카진스키를 시대의 희생양으로만 보는 건 아니다.
저자는 "그는 그의 시대가 낳은 산물이며, 분명 부분적으로는 개인사와 심지어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지만, 또한 자신의 자유의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테러의 시대로 만든 이념들을 포용한 인물"이라며 카진스키와 현대의 테러리즘은 "보편적 인간성보다 이념을 더 중시하는 지적 오만함의 결과로 탄생한 악"이라고 표현했다.
글항아리. 김현우 옮김. 5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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