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이하 현지시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첫 대면 협상을 앞둔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란이 미국과 합의한 휴전 조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되 하루 통과 선박수를 최대 15척으로 제한하고, 한척당 30억원 가량의 통행료를 부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합의 위반'이라며 중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다.
그러자 이란 최고지도자는 "호르무즈 관리 수준을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시킬 것"이라며 해협 통제권을 놓을 생각이 없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다.
한편, 우리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 있는 우리나라 선박의 통행을 위해 이란과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란, 휴전중 호르무즈 통행 하루 15척 이하로 제한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에 합의하고 오는 11일 첫 대면협상을 앞두고 있으나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개방되지 않고 있다.
이란이 하루 통과 선박수를 최대 15척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러시아 타스 통신은 이란 고위 관계자가 "미국과 휴전 합의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하루 15척 이하로만 허용할 것"이라며 "모든 선박의 이동은 이란 당국의 승인과 특정 프로토콜 이행을 전제로 한 조건부 허용"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호르무즈 통항 선박의 프로토콜은 전날 공개된 대체 항로 이용과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통제 방침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제시한 대체 항로는 오만 영해가 대부분인 기존 항로가 아닌 군사기지가 있는 이란 라라크섬에 근접한 경로다. 이란 매체를 통해 공개된 해도에 기존 항로였던 해역은 '위험 구역'이라고 표시됐다.
이란 정부는 이미 이런 방침을 역내 주요 국가들에 공식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란과 오만 사이의 폭 34km의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원유뿐만 아니라 비료 등 필수 재화가 인도양으로 나가는 핵심 통로이기도 하다.
이번 조치는 파키스탄에서 열릴 종전 협상을 앞두고 이란이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란은 해협 통행 선박을 대상으로 통행료를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외신들의 보도에 따르면 통행료는 암호화폐나 중국 위안화로 지급해야 하며, 대형 유조선의 경우 최대 200만 달러(약 30억원)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트럼프 "통행량 제한 합의 위반, 중단하는게 좋을 것"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자신의 SNS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들에 통행료를 부과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들이 있다" 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다. 지금 중단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썼다.
또 다른 게시글에서는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가 통과하도록 허용하는 데 있어 매우 형편없는, 일부 사람들이 비열하다고 말할 만한 일을 하고 있다"며 "그것은 우리가 맺은 합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통행료 부과 문제뿐 아니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통과를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내놓은 일련의 반응은 이란이 재차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비판하면서, 오는 11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될 미국과 이란의 첫 회담을 앞두고 이란에 완전한 해협 개방을 압박하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란 최고지도자 "호르무즈 관리 수준 새로운 차원 격상"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도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9일 호르무즈 해협의 관리 수준을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모즈타바는 성명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관리 및 통제 수준을 새로운 차원으로 격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이번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 대가라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공격한 침략자들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며 "피해에 대한 배상은 물론, 순교자들의 피의 대가도 반드시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즈타바는 이웃 걸프 국가들을 향해선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이웃 국가들이 우리의 우애와 선의에 부합하는 적절한 응답을 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레바논 공격' 휴전 합의 위반 공방도
트럼프 "이스라엘 공격 자제할 것" 네타냐후 "레바논 정부와 협상"
미국과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놓고 휴전 합의 위반 여부에 대한 공방도 벌이고 있다.
이란 측은 미국-이란 간 휴전 합의 직후 이뤄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강력히 비난하며, 이 같은 행위가 중단되지 않을 경우 휴전이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9일 성명을 통해 "휴전 합의 몇 시간 만에 무고한 어린이와 여성을 살해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는 시온주의자 늑대 정권이 베이루트에서 다시 잔혹한 학살을 시작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명백한 휴전 합의 위반이자 인도적 범죄로 규정했다. 특히 이번 사태의 책임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레바논은 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미 공영방송 PBS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대해 "휴전 합의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계속 레바논을 공격해도 문제가 없냐'는 물음에 "그건 협상의 일부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며 "그건 별개의 작은 교전"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레바논 입장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전화 통화 이후 돌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애초 레바논도 휴전 대상이라는 점에 동의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후 레바논은 휴전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미 CBS 방송은 9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레바논도 중동 지역의 휴전 대상에 포함하는 데 동의했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휴전 조건에는 당사국 이란과 중재국 파키스탄은 물론, 이스라엘도 동의한 상태였다고 백악관 당국자가 휴전 발표 당일 CBS에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레바논은 휴전 대상이 아니라는 쪽으로 돌연 입장을 바꿨으며, 이는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한 이후라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논란이 일자 트럼프 대통령은 9일 NBC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의 작전을 "축소하고 있다"고 밝힌 뒤 "비비(네타냐후 총리의 애칭)와 통화했고, 그는 그것(레바논 공격)을 자제할 것"이라며 "우리는 좀 더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 역시 이날 성명을 내고 헤즈볼라 무장해제 및 레바논 정부와의 평화적 관계 수립을 위해 레바논 정부와 직접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조현 "이란에 장관 특사 파견"…이란 외교장관과 통화
한편,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 있는 우리나라 선박의 통행을 위해 이란과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9일 오후 세예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중동 정세와 한·이란 양자 현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외교장관 특사를 이란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미국과 이란 간 휴전에 합의하고 이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통항 재개를 위한 계기가 마련된 것을 환영하면서, 양측 간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돼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조속히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휴전을 계기로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선박을 포함한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재개될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란 내 우리 국민 안전에 대해서도 계속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포함한 중동 상황에 대한 이란의 입장을 설명하고, 한국의 외교장관 특사 파견 추진을 환영하면서 관련 사안에 대해 지속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이란 외무부는 "아라그치 장관이 (조 장관에게) 미국과 휴전 발표 이후 최신 중동 상황을 설명하고 전쟁 중단과 휴전 성사를 지지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입장에 감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 장관에게) 모든 당사자가 완전 종전의 밑받침으로서 모든 전선에서 이번 휴전을 꼭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호르무즈 통항과 관련, "아라그치 장관은 '상대방(미국)이 휴전 기간 약속을 잘 지킨다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안전한 통행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 통행은 이란군과 조율, 현존하는 기술적 제한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이란 외무부는 전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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