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호의 예술의 구석] 유명하지 않아도 똥 싸면 박수 쳐 줄 때가 있다①에 이어
[문화매거진=윤건호 작가] 날것의 문법이 가지는 순수한 강렬함이란 비단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YBA는 증명했다. 성인의 날것이란 생각보다 더 거칠고 잔혹했고, 애써 부정해 왔지만 분명히 그것도 인간이 가진 날것의 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날것’ 역시 ‘쉬움’으로 오해받기 시작했다.
'Sensation'이 남긴 파괴적인 오해
1997년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Sensation’ 전시는 그런 오해의 촉진제가 되었다. 진짜로 똥을 칠한 그림이 전시됐던 것이다. 크리스 오필리의 ‘성모 마리아’는 실제 코끼리 똥을 안료의 일부로 사용했다. 이는 시각적 충격을 넘어 사회적 논란을 폭발시켰다. 교양 있는 미술 전시에서 진짜 똥을 칠한 것도 모자라 회화의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성모 마리아를 ‘똥’으로 그리다니. 이는 신성모독이자 권위에 대한 도전에 가까웠다.
나이지리아라는 본인의 혈통을 기반으로 한 그의 작업은 오히려 신성한 작업이었지만 자극에 매몰된 이들의 ‘성공 공식’에는 기름이 부어졌다. 관심을 끌기 위해선 진짜 ‘똥’ 정도는 싸야 하는구나- 싶었던 것일까. 그들은 똥을 싸기 시작했다.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에서 중국인 관람객 두 명이 방방 뛰는 이른바 ‘관종 짓’을 하며 난동을 부리는 등 배설에 가까운 ‘관종 퍼포먼스’가 횡행했고 근래에도 2023년 국내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에서 서울대생이 작품의 바나나를 떼먹고는 “아침을 안 먹고 와서 배가 고파 먹었다”고 답하는 짠내 나는 아우성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배설을 예술이라고 믿는 그들은 허스트가 상어를 포르말린에 넣기 위해 계산했던 철학적 무게는 생략한 채, 오직 ‘더 센 것’만을 찾아 헤매며 ‘된장과 똥’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국 시장, 비명이 된 예술과 단타형 투자
이러한 오해는 현재 한국 미술 시장에서도 반복된다. ‘올해의 작가상 2023’에서 등장한 리얼돌은 현대미술이 ‘금기’를 다룰 때 대담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시장의 리얼돌은 사회적 감수성을 설득하지 못했다.
한국사회에서 리얼돌은 매우 뜨거운 고통이다. 여성착취, 성 상품화, 인격권 침해 등의 단순한 이슈를 넘어 실제적인 고통을 행사하는 물건이었기에 이것을 소재로 미술적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선 ‘압도적인’ 주제의식과 철학, 완전 부합한 맥락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올해의 작가상’의 리얼돌은 ‘실제적인 폭력성’을 넘어서는 서사를 제시하지 못했다. 인간의 경계를 묻는 그들의 강변은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은 금기의 차용으로 “충격을 위한 충격”이라는 빈껍데기만을 남겼다.
이처럼 작품관을 받치기에 허술한 철학과 정교한 맥락 없는 ‘돌발 행동’은 예술적 승화가 아닌 단순한 ‘관종 행위’라는 냉소에 그치곤 한다. 특히 단기 이익을 좇는 ‘아트테크’ 열풍은 작가들이 묵직한 서사 대신 SNS에서 즉각 반응이 오는 도파민적 시각 요소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허스트의 성공 뒤에 숨은 철학적 아카이브와 시대정신은 간과한 채, 오직 노이즈 마케팅의 결과값만을 쫓고 있다.
똥과 비명은 예술이 아니다.
현대미술에서 박수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맥락 없는 자극은 그저 주목을 구걸하는 비명이자 배설이다. 허스트의 상어가 유효했던 건 딱 그 시대, 그 장소에서 그가 처음 던진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제2의 허스트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똥을 싸서 놀라게 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당신의 배설물이 세상과 어떤 담론을 형성할지부터 설계해야 한다.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된다는 착각은 버려라. 준비되지 않은 배설은 그저 청소해야 할 오물일 뿐이고, 관객은 늘 생각보다 영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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