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보장 위한 장애등급제도 개선, 신약 신속 승인 등 한목소리
“초기 적절한 치료와 환경이 뒷받침되면 환자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초고령사회 치매 다음으로 많이 발병하고 있는 파킨슨병에 대한 얘기다.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파킨슨병환자는 지속 증가해 현재 15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질환에 대한 인식은 물론 치료환경도 녹록잖아 전반적인 제도 개선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이에 대한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KMDS)는 ‘세계 파킨슨병의 날(4월 11일)’을 앞두고 9일 기자간담회를 개최, 파킨슨병환자와 가족들이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들을 공론화하고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을 모색했다.
KMDS 조진환 회장은 “파킨슨병은 절망적인 병이 아니며 조기진단과 치료, 사회적 지지가 있으면 얼마든 품격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며 “이 자리를 통해 환자와 가족들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들이 논의되길 바란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파킨슨병은 신체 움직임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소실되는 질환으로 움직임이 느려지고 손은 떨리며 균형을 잡기 어려워진다. 특히 몸이 구부정한 채 한쪽 발을 질질 끌거나 방향을 바꿀 때 또는 걷기 시작할 때 발이 땅에 붙어 내딛지 못하는 보행동결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파킨슨병환자들은 대표적인 낙상 고위험군으로 꼽힌다. 게다가 환자 대부분이 골다공증으로 뼈가 약해진 상태다 보니 가벼운 낙상에도 골절로 이어진다.
이동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 현재 파킨슨병은 뇌병변장애에 포함돼 장애정도에 따라 1~6등급으로 구분되며 등급별로 이동수단 등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 다만 현 판정기준은 파킨슨병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지원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KMDS 권겸일 보험이사는 현실과 괴리된 장애평가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며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장애평가는 2019년 7월부터 기존의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장애의 정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됐다. 즉 수정 바델지수에 기반해 보행과 일상생활동작 수행능력을 중심으로 전체 기능장애 정도를 판정하는 것이다.
권겸일 보험이사는 “하지만 파킨슨병환자들은 하루 중에도 약효가 좋은 시간과 미약한 시간이 존재해 컨디션이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며 “고정된 상태의 다른 뇌질환자들에게 평가하는 수정바젤지수를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휠체어를 타지 않는 독립보행 가능 파킨슨병환자들은 이동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도 필요에 따라 도움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권겸일 보험이사는 “현 장애평가시스템은 환자들의 실제 필요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원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질환의 특수성을 장애평가 시스템에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날 학회는 파킨슨병환자들의 실제 목소리도 전달했다. 학회 차원에서 시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정책 개선에 대한 환자들의 솔직한 생각을 공개한 것. 환자들은 ▲해외 신약 신속 도입 ▲운동재활센터 및 국가책임제 ▲장애등급 제도 개선 등을 최우선 정책으로 꼽았다.
학회가 지목한 가장 시급한 현안 역시 국내 미도입된 약의 신속 승인이다. 대표적으로 바이알레브는 파킨슨병 치료의 핵심 성분인 레보도파·카비도파를 24시간 동안 미세 용량으로 피하 주입하는 혁신적인 치료제다. 기존 먹는 약(경구제)의 치명적인 한계인 약효변동(ON/OFF) 현상을 최소화해 환자가 일상 기능을 유지하고 삶의 질을 회복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입증됐다.
현재 국내에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구입 가능하지만 정작 약물 투여에 필수적인 전용 장비가 도입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환자들은 약을 구하고도 실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기형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KMDS 윤정한 정책이사는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 38개국에서는 상용화돼 표준치료로 자리 잡았다”며 “바이알레브는 뇌심부자극술이 어려운 중증파킨슨병환자에겐 사실상 유일한 대안으로 식약처의 신속한 승인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파킨슨병의 운동치료와 다학제 접근의 필요성 등이 논의됐다.
파킨슨병환자에게 일상 속 꾸준한 운동은 약물치료만큼 중요하다. 이에 질병청 국립보건연구원은 닥터 파킨슨 애플리케이션과 파킨슨병환자를 위한 운동 책자를 개발, 환자들의 자가운동을 돕고 있다. 학회 차원에서도 줌을 통한 온라인 운동교실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운동특임이사 직책을 별도로 마련, 운동 가이드라인 제작 업무를 집중 수행하고 있다.
조진환 회장은 “학회가 추구하는 파킨슨병 운동 방향은 전문가들의 개입을 통한 재활치료가 아닌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하는 것”이라며 “단 질환 특성상 단계별로 운동 접근법이 달라 현재 모든 파킨슨병환자가 할 수 있는 1단계 운동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검증하는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빠르면 올해 안에 1단계 운동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파킨슨병환자가 운동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파킨슨병환자라는 이유로 헬스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등 차별적인 시선으로 자유롭게 운동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KMDS 권도영 홍보이사는 “차별을 경험한 환자들은 운동 의지가 꺾였다고 속상함을 토로한다”며 “파킨슨병 운동 인증 헬스장 등 환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운동 환경 조성도 고민해볼 일”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다학제 진료에 관해서는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의료수가 등 현실적인 문제를 배제할 순 없다는 설명이다. 조진환 회장은 “파킨슨병은 매우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는 복합적인 질환인 데다 점점 더 나빠져 여러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며 “다만 의료수가 개선 등 현실적인 지원책이 선행되지 않으면 임상현장에서 오롯이 현실화되기는 힘들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