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담아 두기 위해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하지만 늘 만족스럽지 않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역시 거장의 작품과 자주 마주하고 전문 작가의 지도를 받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얼마 전 경기도에 이런 일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 탄생했다.
■ 경기상상캠퍼스에 둥지를 틀다
수원역에서 가까운 경기상상캠퍼스는 언제 찾아도 좋은 공간이다. 아름다운 숲이 자랑인 이곳에 참여형 공공 사진 문화공간인 ‘경기사진센터’(센터장 손승현)가 자리 잡고 있다. ‘사진뜰’이란 이름으로도 불리는 경기사진센터는 과연 어떤 곳일까.
“3월27일 문을 연 경기사진세터는 서울대 농생명과학대학의 강의실과 학생회관으로 사용됐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사진 예술의 창작부터 교육, 전시까지 아우르는 복합 문화 플랫폼입니다. 경기도가 도민의 일상을 기록하고 사진을 매개로 소통하기 위해 마련한 도립 공공 사진 전문 기관인 경기사진센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경기도가 주도해 재생시킨 경기상상캠퍼스가 추구하는 문화적 비전을 이어받아 조성된 공공의 공간답게 센터의 얼굴인 건물 외관부터 멋스럽다.
손승현 센터장의 안내로 경기사진센터를 둘러본다. 2개동, 1천800㎡ 규모의 경기사진센터는 국내에서 사진 관련 기관 중 가장 넓고 규모가 큰 곳이다. “다양한 규모의 기획전과 상설전이 가능하도록 전시실을 가변형 구조로 설계한 것이 강점입니다.” 공모 과정을 거쳐 한양대 ERICA 산학협력단과 중앙대 산학협력단 컨소시엄이 위탁 운영을 맡았다는 점도 경기사진센터의 역량과 비전을 엿볼 수 있는 근거다.
■ 개관 특별전 ‘빛나는 얼굴들: 아이콘에서 우리로’
개관 기념 특별전의 주제가 ‘얼굴’이라서일까, 관람객의 호응이 뜨겁다. “인공지능(AI)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대에 ‘인간의 얼굴’이 가진 본연의 가치와 물성에 집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계에도 알려진 인물사진 거장들의 작품을 풍성하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상의 보이지 않는 내면을 시각화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진 구본창은 배우 안성기·김희선, 작고한 작가 박완서와 노벨상 수상 작가 한강 등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 인물의 초상을 선보인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안성기의 젊은 날의 모습은 관람객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든다. 배우 김혜자가 선한 웃음을 짓고 있다. 눈가에 잡힌 선명한 주름도 환한 미소와 어울려 편안하다. ‘무소유’를 설파한 법정 스님의 단아한 표정은 관람객의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람의 미묘한 감정까지 드러내 보이는 흑백사진은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도 빠져들게 하는 은근한 매력이 있어 여전히 작가들이 좋아한다.
작가 조세현이 선보이는 작품은 대중스타들의 상징적인 모습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를 이야기하듯 풀어낸다. 널따란 전시 공간에 분위기가 전혀 다른 작품이 불쑥 나타난다.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신선혜 작가의 세련된 감각이 돋보인다. 배우 배두나, 전지현, 공성하의 얼굴을 담은 목정욱 작가의 작품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작품 앞에서 배우들의 표정을 뜯어보듯 자세히 살핀다. 사람과 얼굴을 마주해서는 발견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사진 속에 들어 있음을 발견한다. 영화감독 박찬욱, 무용가 안은미, 피아니스트 조성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초상에서 대가들에게만 보이는 여유를 발견한다. 한국적 배경이 담긴 소재와 모델을 결합해 한 사람의 이야기와 한국문화를 나란히 담아내는 작가 김용호의 감각과 역량이 부럽다.
■ 발로 뛰며 담아낸 경기인의 초상
복도의 중앙에서 천장을 바라보는 중년 남자의 표정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익숙한 듯한데 영화배우일까. “아닙니다. 고원태 작가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31개 시·군을 직접 찾아다니며 담은 경기도민의 얼굴입니다.” 경기도 31개 시·군민과 협업해 제작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관람객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사진이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를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깊은 교감의 결과물임을 증명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상설전 ‘파밀리아: 가족과 가족사진’도 무척 흥미롭다. 김도영, 김옥선 작가 등이 참여해 담아낸 가족은 진부한 ‘가족’ 관계를 훌쩍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찍은 가족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얼굴을 비교하며 자세히 살펴봐도 처음 만난 사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기 힘들다. 가족과 남의 경계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드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흥미롭다. 놀라운 것은 또 있다. 5월부터 실행할 ‘반려견과 함께하는 전시 관람’은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경기사진센터의 용기 있는 결단 덕분에 반려동물이 작품을 관람하는 진풍경을 곧 마주할 수 있다니 즐겁다. 이미 실험은 마쳤다고 한다. “반려견들도 사진 속 강아지를 가만히 쳐다보더군요.” 반려견을 ‘가족’으로 둔 이들에게 멋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센터 구성원들이 감당해야 할 보이지 않는 수고를 기억해야 할 것 같다.
■ 세계 작가의 감각을 배우는 곳
오래 머물고 싶은 멋진 공간이 또 있다. 일반 도서관에서는 만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책을 맘껏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표지만 봐도 전문가의 안목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책이 즐비하다. “포토북 라운지는 사진 관련 전문 서적과 도록을 열람하며 휴식할 수 있는 특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열리는 첫 번째 전시는 국제적인 감각과 종이 매체의 가치를 조명하는 ‘100 스위스 포토북스’입니다.” 개관식 때 6개국 관계자들이 참석했을 만큼 사진 선진국과의 국제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주한 스위스대사관의 후원과 스위스 주요 사진 관련 기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마련됐습니다.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예술적 가능성과 보존 가치를 탐구합니다.” 최근 스위스에서 출간된 현대 사진집에서 엄선한 100권의 포토북이 진열돼 있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4개 사진 전문 기관이 직접 선별하고 기증한 도서들로 구성돼 세계적인 수준의 사진 편집 기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기간이 올해 말까지로 넉넉하니 경기상상캠퍼스의 아름다운 숲과 어우러진 라운지에서 세계적인 사진가들의 감각과 시선을 많은 사람이 천천히 음미해 보면 좋겠다.
■ 경기사진센터로 놀러 오세요!
경기사진센터의 스튜디오가 도민이 직접 촬영할 수 있는 전문 조명 설비를 갖춘 오픈 스튜디오라는 사실도 자랑이다. 교육실을 비롯해 현상·인화실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사진의 전당’이다. “아날로그 인화부터 디지털 보정까지 배울 수 있는 실습 공간을 활용해 사진의 전체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한복판인 수원에 경기사진센터가 자리 잡은 것은 반가운 일이다. 경기사진센터가 1천400만 경기도민의 자랑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진의 메카로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센터에 소속된 전문인력이 자신의 역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경기사진센터는 단순한 감상 위주의 전시관을 넘어 ‘기록하는 도민, 소통하는 사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비롯해 연구와 교육, 도민을 대상으로 창작 지원, 기술 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바람대로 센터가 사진예술의 전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허브로 성장하고 기능하면 좋겠다. 경기도민이 언제든 찾아도 좋은 사진예술의 놀이터가 수원특례시에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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