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소비자들의 '명품 사랑'에 대한 자조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들이 연이어 가격을 인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품 열풍이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이러한 악순환은 과거 한국에 못지않았던 중국 시장의 변화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과거 중국 소비자들은 해외 명품 브랜드에 집착 수준의 애정을 보였으나 최근 들어 점차 거리를 두고 있다. 대신 중국 로컬 브랜드에 지갑을 열고 있다. 늘어난 수요에 힘입어 중국 로컬 브랜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직접 명품을 만드는 토종 브랜드까지 등장했다.
높아지는 샤넬의 콧대, 올해만 세 번째 가격인상…그럼에도 식지 않는 한국인의 샤넬 사랑
수년 전부터 지속돼 온 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 행렬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패션·명품 업계 등에 따르면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한국 법인인 샤넬코리아는 올해 들어 대상 제품을 바꿔가며 무려 세 번이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총 5회에 달하는 지난해 인상 횟수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해외 명품 쥬얼리 브랜드 반클리프아펠은 올해 1월과 3월 무려 두 차례나 제품 가격을 올렸다. 또 다른 쥬얼리 브랜드 프레드와 티파니앤코 역시 각각 2월과 3월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 밖에 롤렉스, 에르메스 등도 가격을 최소 한 차례 이상 올렸으며 불가리와 쇼메, 까르띠에 등도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 행렬은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총 5회 인상을 단행한 샤넬을 비롯해 거의 모든 브랜드가 최소 1회 이상 가격 인상을 실시했다. 인상 횟수가 적었던 브랜드의 경우엔 인상폭이 유독 컸다. 일례로 에르메스는 지난해 가격을 단 1회만 올렸지만 인상률은 10% 안팎 수준에 달했다. 통상 2~3% 수준인 타 브랜드의 인상률과는 상당한 차이다. 구찌 역시 지난해 11월 일부 인기 제품의 가격을 9.5% 가량 기습적으로 올렸다. 결국 횟수의 차이만 있었을 뿐 대부분의 제품 가격은 1년 새 10% 가량 올랐다. 지난해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2.1%)의 5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주목되는 점은 한국의 해외 명품 브랜드 제품 가격 인상폭이 유독 높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작년 한국에서 샤넬 제품의 가격 인상률은 8%가 훌쩍 넘었는데 유럽의 인상률은 3~5% 수준에 그쳤다. 미국 역시 4~7.3% 수준에 머물렀다. 에르메스 제품 역시 작년 한국 시장에선 두 자릿수의 가격 인상율을 보였지만 미국과 유럽에선 인상률이 5% 안팎 수준에 불과했다. 가격 인상 품목도 차이를 보였는데 가령 한국에선 전 제품의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면 유럽이나 미국에선 일부 인기 제품만 가격이 올랐다.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소비자들을 '호갱(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신조어)' 취급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유독 한국에서만 해외 명품 브랜드 제품의 가격 인상이 활발한 이유는 수요가 그만큼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가격을 아무리 올려도 수요가 끊이지 않으니 가격 인상을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샤넬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2조130억원으로 전년 대비 9%, 영업이익은 3360억원으로 전년 대비 24.6% 각각 늘었다. 에르메스코리아 역시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21%, 13% 증가한 9643억원, 2667억원 등을 기록했다. 루이비통코리아 역시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5.9% 증가한 1조7484억원, 영업이익은 35.7% 증가한 2867억원 등을 각각 기록했다. 이들 브랜드의 지난해 가격 인상 횟수는 각각 5회, 1회, 3회 등이었다.
"해외 명품 사면 배신자" 180도 변한 中 소비자들, 명품 본고장 장벽 허무는 中 기업들
최근 중국 소비자들의 변화는 해외 명품 브랜드의 폭리에 가까운 가격 인상이 일상인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명품 브랜드들의 현금 인출기'라 불릴 정도로 명품 열풍이 뜨거웠지만 소비자들이 해외 명품과 점차 거리를 벌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지금의 한국 보다 가격 인상이 더욱 기승을 부렸던 과거에 비해 제품 판매량과 실적이 크게 뒷걸음질 쳤다. 경제 성장세 둔화, 해외 명품의 지속적인 가격인상에 따른 반감 여론 확산과 애국소비(궈차오) 열풍, 토종 브랜드 부상 등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경제 둔화와 소비 침체로 인해 LVMH, 구찌 등 해외 명품 브랜드의 인기는 주춤하고 있으며 반대로 중국 소비자들이 자국 명품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보도했다. 약 한 달여 후인 12월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가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당시 기사 내용에 따르면 중국 시장 내에서 현지 브랜드가 해외 브랜드를 앞질러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이에 해외 브랜드들은 제품 현지화, 개발 속도 가속화, 마케팅 방식 전환, 가격 인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중국 시장에서 해외 명품 브랜드의 부진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중국의 해외 명품 소비는 2021년 4700억위안(약 103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3600억~3700억위안(약 81조3000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인기 명품 브랜드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일례로 샤넬은 2024년 회계연도에서 아시아 지역 매출이 7.1% 감소했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이 지목됐다.
반면 중국 토종 브랜드, 그 중에서도 럭셔리 브랜드의 실적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 미디어 분석기관 아이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토종 브랜드들의 전체 실적 규모는 2022년 1조8700억위안(약 409조3617억원)) 수준이었으나 이듬해 2조500억위안(약 448조765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오는 2028년에는 3조위안(656조7300억원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데이터 분석업체 빅원랩에 따르면 중국 토종 명품 기업 5곳의 지난 2년간 온라인 매출 성장률은 해외 경쟁사 7곳을 앞질렀다.
개별 기업의 성과도 두드러지고 있다. 초고가 금(金)제품 생산·판매 기업인 라오푸골드의 경우 지난 2020년 매출액은 8억9000만위안(약 1951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273억위안(약 5조9844억원)까지 늘었다. 라오푸골드는 설립 초기부터 중국 왕실의 전통 세공 기술로 600시간을 들여 작업한 제품임을 앞세워 기존의 명품 소비자층을 공략해 왔다. 자국을 넘어 명품의 본고장인 유럽까지 진출하는 기업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중국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 '보쓰덩'은 설립 후 고속 성장을 거듭해 지금은 중국에서만 1000개가 넘는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 중이다. 또 명품의 본고장 이탈리아에도 35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보쓰덩의 2024년 4월~2025년 3월 기준 매출은 250억위안(약 5조6000억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소비 시장의 변화와 자국 브랜드 인기는 '명품 공화국' 오명에 휩싸인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릴만한 사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유독 한국에서만 공격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이유는 가격이 오를수록 과시 욕구가 강해지는 한국 특유의 '베블런 효과'를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며 아무리 가격을 올려도 수요가 줄지 않는 한국은 브랜드 입장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좋은 시장이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소비자들도 무조건적인 브랜드 추종을 지양하고 중국의 사례처럼 실리 중심의 합리적인 소비로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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