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택시 라디오에서는 FM 방송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곡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정체에 말려든 택시 안에서 듣기에 어울리는 음악이랄수는 없었다. "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신포니에타'를 들어본적이 없었다. 도쿄의 고속도로 위, 정체된 차 안에서 여주인공 아오마메가 듣는 음악. 금관악기가 서주를 장식하는 이 독특한 음악은 소설을 현실로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금관이 힘차게 울려 퍼지는 그 서두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다. 현실과 비현실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1Q84의 세계’를 여는 문과도 같다. 하루키는 왜 이 곡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작곡가 야나체크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야나체크는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하며 음악을 배웠지만, 그의 진짜 스승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람의 말’이었다. 그는 시장에서 들리는 상인의 외침, 아이들의 웃음, 연인의 속삭임까지 악보에 옮기려 했다. 실제로 그는 대화의 억양을 음표로 기록하는 독특한 습관을 지녔다.
이러한 집착은 훗날 그의 음악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선율은 유려하게 흐르기보다 짧고 단호하게 끊기고, 리듬은 마치 말하듯 살아 움직인다. ‘신포니에타’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1920년대 중반, 야나체크는 체코 군악대의 금관 연주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울림,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힘찬 외침. 그는 그 소리를 “국가의 숨결”이라고 표현했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바로 ‘신포니에타’다. 특히 서곡 부분에 등장하는 12개의 트럼펫과 확장된 금관 편성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음악은 시작부터 선언하듯 울린다. 마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초연 당시 이 곡은 단순한 관현악 작품을 넘어 ‘국가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사람들은 이 음악에서 자유와 자부심을 읽어냈다.
하지만 ‘신포니에타’의 매력은 단순한 장엄함에 있지 않다. 곡을 따라가다 보면 금관의 찬란함 뒤에 숨어 있는 섬세한 정서가 드러난다. 목관의 짧은 선율, 현악의 긴장된 떨림은 도시의 골목과 사람들의 숨결을 떠올리게 한다.
이 때문에 음악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하나의 도시를 그린 교향적 스케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야나체크는 이 곡의 각 악장에 ‘성’, ‘수도원’, ‘거리’ 등 도시의 공간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담았다. 음악은 건축처럼 쌓이고, 거리처럼 흐른다.
야나체크의 음악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지 않았다. 사람의 말과 감정, 그리고 시대의 공기를 음악으로 번역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제 들어도 현재형이다.
한 음악학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야나체크의 음악은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느껴진다.”
실제로 ‘신포니에타’를 듣다 보면 논리보다 감각이 먼저 반응한다. 금관의 울림은 심장을 두드리고, 리듬은 걸음을 재촉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신포니에타’는 하나의 풍경이다. 독립을 향한 시대의 열망, 도시의 소음과 생명력, 그리고 인간의 목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진 거대한 음향의 지도다.
그리고 그 지도는 소설 속에서도,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펼쳐진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재생하는 순간, 우리는 소설속 주인공인 아오마메처럼 또 다른 세계의 입구에 서게 된다.
금관이 울린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뉴스컬처 최병일 skyc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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