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신혜선 작가의 작업은 ‘속도’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과잉된 이미지와 빠른 소비의 리듬 속에서, 작가는 감각의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는 ‘멈춤’을 호출한다. 이때의 멈춤은 단순한 정지 상태가 아니라, 세계를 다시 감각하기 위한 능동적 전환의 계기다. 익숙한 시선의 관성을 걷어내고 대상과 깊이 대면하는 시간, 그 느린 응시의 틈에서 비로소 감각은 새로운 층위를 드러낸다.
전시는 ‘사색종이가방’이라는 절제된 형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오브제는 고정된 의미를 지닌 상징이라기보다, 사유가 유입되고 빠져나가는 유동적 매개에 가깝다. 관람자의 감각과 호흡에 따라 끊임없이 갱신되는 이 열린 형식은, 전시 공간을 하나의 공명 구조로 전환시킨다. 특히 회화와 세라믹 오브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물리적 긴장은 평면의 한계를 확장하며, 감각의 밀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수십 개의 캔버스를 직조하듯 배열한 집합적 구성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각각의 화면은 독립된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여백을 통과하며 느슨한 연결을 형성한다. 이는 단일한 서사로 수렴되기보다, 미세한 호흡들이 선형적 리듬으로 이어지는 방식에 가깝다. 그 결과, 전시는 하나의 완결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다층적인 감각의 흐름을 생성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얇게 중첩된 색면 회화는 시간의 축적을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포개진 색층은, 화면 위에 미묘한 공기감을 형성하며 시선을 천천히 머물게 한다. 이 모호한 층위는 명확한 의미 규정을 유보한 채, 감각이 생성되는 심층을 드러낸다. 여기에 개입한 세라믹 오브제는 빛과 시간에 반응하며 변화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정적인 회화에 미세한 동적 리듬을 부여한다.
작가가 명명한 ‘무미(無味)의 회화’는 이러한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무’는 결핍이나 공백이 아닌, 감각과 의미가 과도하게 규정되기 이전의 맑고 열린 상태를 지시한다. 의도적으로 비워낸 화면은 특정한 해석으로 수렴되지 않으며, 오히려 다양한 가능성이 발생하는 여지를 남긴다. 이는 관람자에게 해석의 권한을 환원시키는 동시에, 각자의 감각과 사유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결국 전시는 ‘본다’는 행위의 방식을 재고하게 만든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의 흐름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 서서 감각의 깊이를 탐색하도록 유도한다. 분주한 일상의 소음을 덜어낸 자리에서 관람자는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며, 각자의 ‘사색종이가방’에 고요한 사유의 시간을 담아가게 된다.
신혜선 작가의 개인전 'The PaperBag of Thought : Gentle Pause'은 4월 7일부터 5월 16일까지 헤드비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헤드비갤러리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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