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16] 이집트 대박물관(GEM)⑪ 소년 왕의 멈춰진 오후, 그 가장 사적인 만찬과 안식: 대이집트 박물관 투탕카멘 라이프스타일②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EM)의 투탕카멘 전시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정체성’일지 모른다. 3,300년이라는 기나긴 침묵을 깨고 우리 앞에 나타난 소년 왕 투탕카멘은 단순히 화려한 황금 가면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급격한 종교적 전환기와 정치적 혼란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조상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부정해야 했던 복잡한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유물은 그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세상을 살았는지를 조용하게 말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 역사는 투탕카멘을 ‘비운의 소년 왕’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역사는 훨씬 더 치밀하고 잔혹하며, 동시에 애틋한 인간미를 품고 있다. 그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의 아버지 혹은 선왕이었던 ‘아케나톤(Akhenaten)’을 마주해야 한다. 아케나톤은 이집트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개혁가였다. 수천 년간 이어진 다신교 전통을 폐지하고 오직 태양신 ‘아텐’만을 섬기는 유일신교를 선포한 그는, 수도를 아마르나(현재의 알민야Al-minya)로 옮기며 예술 양식조차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마르나 미술’이다. 신성하고 엄격한 미술적 기법 대신, 인간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가족 간의 친밀한 감정을 드러내는 이 파격적인 양식은 투탕카멘의 유년기를 지배한 정체성의 뿌리였다.
전시실 중앙을 차지한 황금 의자는 투탕카멘의 정체성이 겪은 가장 드라마틱한 혼란과 타협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유물이다. 의자 전체를 감싼 두꺼운 금판은 변치 않는 왕권의 신성을 상징하지만,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은 등받이에 새겨진 부조다. 그곳에는 왕과 왕비의 일상이 너무나도 다정하고 인간적인 필치로 그려져 있다. 이는 정형화된 고전 이집트 미술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오직 ‘아마르나’ 양식만이 가졌던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이다. 고대 이집트의 왕이 이처럼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어 앉고, 왕비가 그의 어깨에 다정하게 향유를 바르는 모습은 이전 시대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격이었다.
이 부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투탕카멘의 정체성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화면 상단에는 ‘아텐 신’을 상징하는 태양 원반이 있고, 그 광선 끝에 달린 작은 손들이 왕실 가족을 직접 축복하며 생명의 기운을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아케나톤이 세운 유일신 사상의 핵심 도상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의자의 팔걸이와 다른 부분에는 이미 전통적인 ‘아문’ 신앙의 상징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의자의 상형문자에는 투탕카멘의 본명인 ‘투탕카텐(아텐의 살아있는 형상)’과 개명한 이름인 ‘투탕카멘(아문의 살아있는 형상)’이 동시에 기록되어 있다. 소년 왕이 아버지의 유산인 아마르나의 정서와 자신이 지켜야 할 제국의 전통이라는 두 갈래 길 사이에서 겪었을 정체성의 과도기를 이보다 더 완벽하게 보여주는 유물은 없을 것이다.
의자 옆면을 채운 화려한 보석과 상감 기법은 당시 이집트가 누렸던 풍요의 극치를 보여준다. 의자 구석구석을 수놓은 깊은 바다 빛깔의 푸른 보석과 따스한 노을을 닮은 붉은 보석들은 이 의자를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보석 상자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 화려함 속에는 슬픈 정치적 배경이 숨어 있다. 투탕카멘은 왜 결국 아버지 아케나톤의 흔적을 지워야만 했을까?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아케나톤의 급진적인 개혁은 당시 막강한 부와 권력을 쥐고 있던 아문 사제들과 귀족들의 분노를 샀고, 그가 죽자마자 이집트는 거대한 혼란에 빠졌다. 불과 아홉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소년은 무너져 가는 왕권을 복구하기 위해 사제들의 요구대로 다시 전통 신앙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의자 뒷모습을 보며 투탕카멘은 잠시 배경의 파피루스 숲에만 매몰되었던 것 같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면의 진정한 주인공은 단연 ‘네 마리의 코브라(우라에우스)’다. 이들은 태양 원반을 머리에 이고 왕의 뒷모습을 철저히 감시하고 보호하는 신성한 수호자들이다. 코브라 뒤로 펼쳐진 정교한 배경은 나일강변의 풍요로운 파피루스 숲을 묘사한 것인데, 그 사이로 날아오르는 오리 떼의 모습은 아마르나 미술 특유의 생동감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뒷면까지 이토록 세밀하게 장식한 것은 사후 세계의 어둠 속에서도 왕의 권위와 풍요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장인들의 숭고한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투탕카멘은 자신의 이름에서 '아텐'을 지웠지만, 자신이 가장 아꼈을 이 의자의 보이지 않는 뒷면에는 아버지 시대의 아름다운 자연주의 양식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이 작은 의자의 다리는 마치 살아있는 동물의 다리처럼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발 끝부분에는 상아로 발톱까지 묘사되어 있다. 황금 의자가 주는 위압감과는 다른, 손에 닿을 듯한 친근한 미학이 느껴진다. 이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놀이를 즐겼을 소년 투탕카멘을 상상해 보라. 그는 과연 자신이 곧 이 거대한 제국의 운명을 짊어지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이 의자는 그가 가장 평온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안식처였을지도 모른다.
투탕카멘의 정체성은 그의 신체적 한계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무덤에서는 130개가 넘는 지팡이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식품이 아니었다. 아직 논쟁 중이긴 하지만 DNA 분석 결과, 투탕카멘은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보행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적을 정복해야 하는 파라오가 지팡이 없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감내해야 했던 정체성의 괴리를 짐작하게 한다. 겉으로는 신의 아들이라 칭송받았지만, 속으로는 육체적 고통과 싸워야 했던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진실이 지팡이 끝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헤카(굽은 지팡이)’와 ‘네카카(도리깨)’는 원래 목자가 양 떼를 돌보고 농부가 곡식을 타작하던 도구에서 유래했다. 투탕카멘은 이 도구들을 쥐고 자신이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목자임을 드러냈다. 하지만 전시실 다른 쪽에 놓인 실용적인 지팡이들은 그의 발이 안쪽으로 휘어 있었음을 증언한다. 소년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제단의 계단을 올랐을 것이고, 화려한 행렬 속에서도 자신의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를 감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파라오의 위엄과 인간의 고통, 그 사이에서 투탕카멘은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을까?
그렇다면 투탕카멘은 자신의 한계와 죽음을 어떻게 마주했을까. 전시실 한편에서 빛나는 ‘연꽃 위에서 피어나는 소년의 얼굴’은 그 답을 제시한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연꽃은 밤에 꽃잎을 닫고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아침에 다시 떠오르는 특성 때문에 ‘재생’과 ‘부활’을 상징했다. 투탕카멘을 연꽃에서 피어나는 모습으로 묘사한 이 유물은, 그가 죽음이라는 긴 밤을 지나 매일 아침 태양처럼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종교적 정체성을 담고 있다.
여기서 보이는 앳된 얼굴은 아마르나 미술 특유의 부드럽고 사실적인 필치가 극대화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약간 돌출된 입술과 크고 깊은 눈망울은 그가 실제로 가졌던 외모의 특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 유물을 보고 있으면 그는 더 이상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한 명의 청년으로 다가온다. 죽음을 앞둔 소년이 꿈꿨던 것은 거창한 권력이 아니라, 매일 아침 연꽃처럼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투탕카멘의 유물들은 때로 우리에게 너무나 실질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팔이 없는 나무 상반신상은 당시 왕실의 일상적인 풍경을 짐작하게 하는 독특한 유물이다. 이는 실제 투탕카멘의 체격을 그대로 본떠 만든 일종의 마네킹으로, 왕의 화려한 옷을 재단하거나 가슴 장식인 '펙토랄'을 미리 걸어보기 위한 용도였다. 비록 팔은 생략되어 있지만, 얼굴의 윤곽과 몸통의 곡선은 3,300년 전 그가 우리 앞에 실제로 서 있는 듯한 생동감을 전해준다.
이 마네킹을 통해 우리는 박제된 역사가 아닌, 숨 쉬고 옷을 입으며 거울 앞에 섰을 한 청년의 체취를 느낀다. 그는 파라오로서 입어야 할 무거운 예복을 이 마네킹에 입혀보며 자신의 이미지를 가다듬었을 것이다. 사실적인 얼굴 묘사 덕분에 우리는 그의 광대뼈 높이와 턱선 각도까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예술 작품이기 이전에 한 인간의 실제 존재를 증명하는 물리적인 기록이다. 이 마네킹 앞에 서면 우리는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와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기이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투탕카멘의 정체성은 그 자신의 유물뿐만 아니라, 그를 존재하게 한 가족의 흔적을 통해서도 완성된다. 전시실 한구석, 작은 미니어처 관 모양의 상자 안에서 발견된 이 머리카락 타래는 황금 가면에 비해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황금의 무게보다 더 묵직하다. DNA 분석을 통해 이것이 그의 할머니, 티예 왕비의 것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왼쪽에 보이는 티예 왕비의 조각상(베를린 신 박물관 소장)은 투탕카멘 무덤의 유물은 아니지만, 그녀가 고대 이집트 역사상 얼마나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는지를 단번에 느끼게 해준다. 어두운 흑단 나무로 조각된 그녀의 얼굴은 고귀함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풍긴다. 투탕카멘은 자신의 무덤 가장 깊숙한 곳에, 이토록 강력했던 할머니의 흔적을 소중히 간직했다.
모든 게 변하고 파괴되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소년 왕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가족이라는 혈연적 정체성이었을 것이다. 그는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통해 자신이 18왕조의 정통 혈통임을 확인하고, 동시에 인간으로서 가졌던 그리움을 표현했을 것이다. 황금 가면이 파라오의 영원한 불멸을 상징한다면, 이 머리카락 타래는 소년 투탕카멘이 가졌던 가장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음의 증표일 것이다. 우리는 이 작고 소박한 유물 앞에서, 수천 년 전의 소년 왕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투탕카멘의 ‘정체성 전시실’을 나설 때, 우리는 더 이상 그를 화려한 황금의 주인으로만 보지 않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파격적인 유산을 가슴에 품은 채 전통의 부활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짊어졌던 소년이었고,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연약한 육체를 가졌으나 영원한 부활을 꿈꿨던 파라오였다. 후대의 왕들은 그의 이름을 역사에서 지우려 했지만, 그들이 지우려 했던 그 이름은 오히려 가장 완벽한 유적의 형태로 남아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투탕카멘의 진정한 정체성은 그가 남긴 수천 점의 유물들 사이의 여백에 존재한다. 금빛 찬란한 권위와 흑단 의자의 소박함, 지팡이의 고통과 연꽃의 부활, 그리고 할머니의 머리카락에 담긴 그리움까지… 이 모든 모순된 파편들이 모여 ‘투탕카멘'’이라는 소박하지만 화려한 역사를 완성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죽은 왕의 무덤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찾으려 했던 한 인간의 뜨거운 생애를 마주한다. 어떤 권력도, 어떤 망각의 시도도 진실된 인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는 것… 투탕카멘은 오늘도 우리 곁에서 그 찬란한 황금빛 미소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가 마침내 되찾은 이름, 투탕카멘. 그 이름은 이제 망각의 늪을 건너 불멸의 상징으로 우리 가슴 속에 깊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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