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유가와 휘발유 가격 급등으로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자 유럽 각국이 에너지 자립 방안으로 원자력 발전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BBC는 4일(현지시간) 유럽 국가들이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원자력 에너지 재도입 또는 확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은 이미 한 차례 에너지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 생활비 위기를 겪으면서 에너지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으로서 원자력의 가치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최근 유럽이 원자력 발전을 외면한 것은 “전략적 실수”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유럽의 원자력 발전 비중은 1990년 약 33%에서 현재 15% 수준으로 감소했으며, 그 결과 석유와 가스 등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현재 유럽은 전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외부 변수에 취약한 구조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러시아발 공급 차질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국가별 에너지 구조에 따라 전기요금 격차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는 반면, 가스 의존도가 높은 이탈리아는 높은 전기요금 부담을 겪고 있다. 원자력 비중이 높은 프랑스는 전력의 약 65%를 원자력으로 생산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전력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원전 폐지 정책 이후 에너지 비용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추진했으며, 이에 따라 자동차·화학 산업 등 주요 산업이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왔다. 최근에는 글로벌 가스 가격 상승 영향으로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크게 하향 조정됐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유럽 전역에서는 원자력 정책의 변화 조짐이 뚜렷하다. 이탈리아는 원전 금지 해제를 검토하고 있으며, 벨기에는 정책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은 과거 탈원전 결정을 뒤집었고, 그리스 역시 신규 원자로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영국도 원자력 프로젝트 확대를 위해 규제 완화에 나섰다.
다만 원자력 확대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으며, 환경단체들은 원전 투자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저해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국가들이 여전히 러시아의 핵 기술과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또 다른 리스크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원자력이 에너지 위기의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한다. 채텀하우스 연구원 크리스 에일렛은 “원자력이 에너지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유럽의 과거 경험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유럽은 에너지 안보와 친환경 전환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복잡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모습이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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