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국내 배터리 3사가 지난해 업황 불황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했다. 신기술 개발에 쏟아부은 자금만 총 3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배터리 기업의 공세에 맞서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7일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사업보고서를 종합하면 지난해 국내 배터리 3사의 공장 가동률은 LG에너지솔루션 47.6%, 삼성SDI 50%, SK온 48.7%로 집계됐다. 2022년에는 3사의 평균 가동률이 81.4%에 달했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영향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가동률이 낮아졌다.
이에 따라 3사의 실적도 적자 터널을 지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조3461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지만, 4분기에 122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1조722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SK온(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문)도 같은 기간 931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R&D 투자는 늘렸다. 지난해 3사 합산 R&D 비용은 총 3조60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2조6628억원) 대비 약 14.9% 증가한 수치다. 다가올 배터리 수요 회복기에 대비해 중국 등 경쟁국과 경쟁사가 따라오지 못할 기술·제품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투자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배터리 시장의 확장성이 높은 상황이고, 전기차뿐 아니라 에너지 인프라부터 차세대 전지까지 기술력을 확장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라며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R&D 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사 중 R&D 비용을 가장 많이 집행한 곳은 삼성SDI다. 영업손실 규모가 3사 중 가장 컸음에도 1조4209억원을 투자하는 공격적 행보를 보였다. 삼성SDI는 ▲2022년 1조763억원 ▲2023년 1조1363억원 ▲2024년 1조2976억원 ▲2025년 1조4209억원으로 R&D 비용을 꾸준히 늘려왔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도 같은 기간 5.4%, 5.3%, 7.8%, 10.7%로 확대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를 비롯해 전기차용 고에너지밀도 각형·원형 배터리, IT 제품용 파우치형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소재·전극 기술과 신공정·설비 등에 R&D 화력을 분산 배치하고 있다. 배터리 시장이 다변화되는 만큼 기술력을 다방면으로 확장하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특히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선두 주자 위치를 확보했다. 삼성SDI는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900Wh/L의 에너지밀도를 구현하는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가장 빠른 양산 시점이다. 삼성SDI 최주선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내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휴머노이드와 전기차 등에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며 “나트륨 및 리튬메탈 배터리 등 미래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업계 최고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R&D에 1조3277억원을 투자했다. 전년 대비 22.0% 증가한 수치다. R&D 투자액은 ▲2022년 8760억원 ▲2023년 1조374억원 ▲2024년 1조882억원 ▲2025년 1조3277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도 3.4%, 3.1%, 4.2%, 5.6%로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고체·바이폴라·소듐이온(나트륨) 배터리와 건식전극 공정 등 차세대 기술 확보와 ESS 경쟁력 강화에 R&D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ESS는 신규 수주 목표를 지난해 최대치였던 90GWh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설정하고, 올해 말까지 글로벌 ESS 생산능력을 60GWh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 김동명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지금은 산업의 성장 가치가 재편되는 밸류 시프트(Value Shift)의 시기”라며 “ESS와 신사업 비중을 현재 20% 수준에서 향후 40% 중반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온 역시 R&D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2021년 10월 출범 이후 2024년 3분기(영업이익 240억원)를 제외하고 흑자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도 R&D 투자를 통한 반등을 노렸다. 지난해만 R&D 비용을 전년 대비 12% 이상 늘렸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 규모가 3조6000억원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과감한 투자다.
SK온은 ▲2022년 2346억원 ▲2023년 3006억원 ▲2024년 2770억원 ▲2025년 3121억원을 R&D에 투자했다. 2024년 매출 감소 여파로 R&D 투자가 주춤했지만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시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매출액 대비 R&D 비용을 비교해 보면 2022년 2.33%에서 지난해 4.67%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SK온은 성장성이 높은 ESS 부문을 집중 육성하며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특히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점을 기존 2030년에서 2029년으로 1년 앞당기며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추형욱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기술 개발을 통해 제품 및 원가 경쟁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며 “배터리 사업에 대한 의지와 전략 방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배터리 3사가 R&D 화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경쟁사와 간극은 좁히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3사 합산 R&D 비용은 중국 CATL이 투자한 21억위안(4조800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올해다. 3사 모두 1분기 실적에서 적자가 예상되는 만큼 R&D 투자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배터리 기업의 추격이 거센 만큼 R&D 투자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하반기 실적 반등을 전제로, 실적 개선이 R&D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것이란 기대가 실린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이 R&D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어 기술적 차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실적에 여력이 생기면 R&D에 더 투자하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배터리 업계는 R&D 비용을 꾸준히 늘리며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다”며 “실적 변동으로 갑자기 R&D 비용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실적 반등을 이끄는 건 전기차와 ESS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고유가로 전기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보이고, 유럽에서도 전기차 신차 판매율이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었다”며 “ESS도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 하반기쯤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며 반등을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하반기 ESS를 중심으로 고성장이 예상되고, 로봇 등 신시장도 열리고 있다”며 “중국과 비교하면 R&D 비용은 적을 수밖에 없지만, 국내 배터리사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기술 확보에 매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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