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국립무형유산원이 준비한 2026년 개막공연 '산화비(山火賁)'는 주역(周易)의 22번째 괘에서 착안했다. 주역은 음양과 64괘의 상징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변화 원리를 설명한 동양의 고전을 설명하는 것으로, 본질 위의 단정한 아름다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부제는 '무형유산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다'다. 오래 전승된 무형유산의 힘을 오늘 무대 감각과 만나게 하겠다는 뜻이 제목부터 또렷하다.
'산화비' 공연은 숨·소리·선·빛·판·예·화합 일곱 갈래로 흐른다. 숨에서는 피리정악과 대취타가 하늘의 숨과 자연의 기운을 연다. 소리에서는 서도소리가 무형유산의 숨결을 깨운다. 선은 갓춤으로 이어지고 빛은 금박장과 태평무가 한국적 미감을 비춘다. 판에서는 황해도평산소놀음굿과 북청사자놀음이 무대 열기를 끌어올린다. 예에서는 종묘제례악과 퍼포먼스가 장엄한 결을 만든다. 마지막 화합은 전 출연진이 함께하는 아리랑으로 맺는다. 한 무대 안에 소리와 춤, 공예와 제의, 음악과 연희가 촘촘히 배치돼 있다.
가장 깊은 울림을 예고하는 이름은 김광숙 보유자다. 국가무형유산 서도소리 보유자인 김광숙 보유자는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창악 악장, 사단법인 서도소리보존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광숙 보유자는 소리 대목 중심에 서서 서도소리 특유의 애잔한 결과 넓은 성음, 긴 여운을 객석에 풀어낼 예정이다. 국가무형문화재 피리 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인 오초롱 연주자와 함께 이름을 올려 소리와 관악의 호흡이 어떻게 맞물릴지도 주요 감상 지점이 될 만하다.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양성옥 보유자는 빛 대목 중심축이다. 태평무는 왕과 왕비의 복식미, 발디딤의 기품, 장단의 긴장감이 함께 살아야 제맛이 나는 춤이다. 국가유산청 전승공예품은행 소장 금박장 자료가 더해지고 해금 강은일, 타악·운라 한솔잎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금박의 찬란한 문양과 태평무의 기품 있는 춤사위가 만나 한국적 빛의 미를 한층 농밀하게 드러낼 전망이다.
이북5도 평안도배뱅이굿 박정욱 보유자는 공연 후반부 판 대목에서 무대 공기를 뒤흔든다. 황해도평산소놀음굿과 북청사자놀음이 맞물리는 장면에서 굿판의 서사와 호흡을 이끄는 중심축 구실을 맡는다. 웃음과 울음, 제의와 놀이가 뒤섞이는 굿판의 힘이 밴드 64ksana와 연희점추리의 에너지와 맞물린다.
남인우 연출가는 무대 방향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남인우는 "전통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감각과 함께 숨 쉬고 있다'며 "전통은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살아있는 우리의 자산"이라고 작품을 소개한다. '산화비'는 바로 이런 뜻 위에서 움직인다. 김광숙의 서도소리, 양성옥의 태평무, 박정욱의 평안도배뱅이굿은 각기 다른 종목을 대표하면서도 이번 무대에서는 한 흐름 안에서 만난다. 오래 전승된 소리와 춤, 굿판의 깊이가 오늘 관객 앞에서 새 결을 얻는 시간인 셈이다.
화려한 융합 구호보다 보유자들의 몸과 소리, 축적된 내공에 무게를 둔 공연에 가깝다. 서도의 울림을 품은 김광숙, 태평의 기품을 세우는 양성옥, 평안 굿판의 신명을 불러내는 박정욱이 무대 한가운데서 공연의 뼈대를 세운다. 공연이 왜 본질 위의 단정한 아름다움을 제목으로 내세웠는지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무형유산의 힘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전주 얼쑤마루 무대에서는 과거의 전통과 오늘날의 전통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뉴스컬처 이상완 bolante484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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