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가족을 향한 책임이 한 소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17세 지영의 하루는 또래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학교와 친구 대신, 그녀의 시간을 채우는 건 세 명의 동생과 병든 부모, 그리고 무너져가는 집이다. 오는 4일 방송되는 KBS1 ‘동행’은 이른 나이에 삶의 중심이 되어버린 지영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지영의 집은 늘 북적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둘째 지원,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쌍둥이 지애와 지민까지. 세 동생을 챙기는 일은 하루를 순식간에 소모시킨다.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지원을 설득하고, 어린 동생들의 머리를 감기고 씻기는 일까지 대부분 지영의 몫이다. 그 사이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며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하지만 지영 역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했던 시기를 지나왔다. 사시와 안검하수로 인해 또래들에게 시선을 받으며 마음고생을 겪었지만, 지금은 가족이 버팀목이 됐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질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진 모습이다. 지영이 바라는 건 거창하지 않다. 가족 모두가 아프지 않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부모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어머니 아름 씨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환경 속에서 알코올 의존을 겪었고, 현재는 금주를 이어가고 있지만 일상 유지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이다. 육아와 생계 모두에서 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버지 영호 씨 역시 가족을 지탱하기엔 몸 상태가 여의치 않다. 오랜 뱃일 끝에 4년 전 위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과 항암 치료를 거치며 체력은 크게 떨어졌다. 위 절제 이후 소화 장애까지 겹치면서 예전처럼 바다에 나가는 일도 쉽지 않다. 주변의 배려로 일거리마저 줄어든 지금, 통발 손질이나 해조류 채취 등 가능한 일을 찾아 나서는 것이 전부다.
생활은 집 안에서도 위태롭다. 이들이 사는 공간은 기초 공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세워진 집이다. 바닥은 늘 습기로 젖어 있고, 전기장판을 걷으면 물기가 배어 나온다. 곰팡이는 벽과 천장을 가리지 않는다. 욕실이 없어 바깥 수돗가에서 번갈아 씻어야 하는 환경은 아이들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감기를 달고 사는 일상이 반복되지만, 이사를 고민할 여력조차 없다.
부모는 미안함을, 지영은 책임을 안고 살아간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분명하지만, 현실은 그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영은 오늘도 동생들의 손을 잡고 하루를 버텨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성장기, 그 중심에서 가족을 지키고 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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