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 칼럼] 이야기 소묘① 우리가 서로에게 지고 있는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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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칼럼] 이야기 소묘① 우리가 서로에게 지고 있는 의무

문화매거진 2026-04-03 14:04:41 신고

▲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의무, 팀 스캔론, 강명신 역, 한울아카데미
▲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의무, 팀 스캔론, 강명신 역, 한울아카데미


[문화매거진=이응 작가] 몇 해 전 넷플릭스에서 본 드라마 ‘굿 플레이스’를 통해 철학자 스캔론의 저서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의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다. 그 문장은 오랫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화두처럼 머물렀고, 최근 노령견의 돌봄과 생의 마지막 주기를 지켜보는 현실 속에서 그 무게는 더욱 육중해졌다. 사랑과 연민만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 돌봄의 현장, 그 치열한 일상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지고 있는 의무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다시금 묻게 된다.

흔히 아픈 존재를 돌보는 일을 숭고한 사랑이나 연민의 영역으로 갈음하곤 한다. 그러나 돌봄의 실체는 지독하리만큼 구체적이다. 그것은 시간과 노동의 투여이며, 경제적 비용과 체력의 소진, 생활 공간의 잠식과 관계의 긴장을 수반한다. 그리하여 돌봄의 현실은 감정의 문제를 넘어 곧 ‘책임의 문제’로 직결된다. 누가 실제로 그 짐을 짊어지는가, 누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가, 그리고 그 결과로 뒤따르는 고통을 누가 오롯이 감내하는가의 문제가 그 안에서 쉼 없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스캔런의 철학에서 핵심은 ‘의무’라는 단어보다 ‘서로에게(to each other)’라는 관계의 지향성에 있다. 그에게 도덕이란 홀로 완성하는 내면의 미덕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타인에게 어떤 부담을 요구할 수 있고, 나의 선택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를 따져 묻는 일이다. 돌봄의 장면이 유독 고통스러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곳에서는 선의(善意)만으로 모든 곤란이 해결되지 않으며,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의 크기와 한계가 날 선 칼날처럼 드러나기 때문이다. 

선의는 흔히 끝없이 요청되지만, 돌봄에 필요한 자원(시간, 비용, 체력)은 철저히 유한하다. 그로 인해 돌봄의 현장에서는 종종 돌봄 받는 존재의 생명 유지와 보호자의 생존권(생활권)이 격렬하게 충돌할 수 있다. 돌봄이 길어질수록 감정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물리적 제약(돈, 시간, 몸)만 남게 되는데, 이 물리적 제약을 나누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누가 얼마나 손해 볼 것인가’라는 날카로운 손익 계산과 책임 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스캔런은 도덕의 본질을 결과의 총합이 아닌 ‘정당화의 가능성’에서 찾는다. 내 선택의 무게를 견뎌야 할 이에게 그 이유를 떳떳이 설명할 수 있는지, 상대에게도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하며, 쉽게 부당하다고 거부되기 어려운 결정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돌봄의 상황에서 극도로 예민하게 작동한다. 아픈 존재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치료를 지속하는 것과 더 이상의 개입이 고통의 연장일 뿐이라 판단하여 멈추는 것 중 무엇이 더 책임 있는 자세인가. 끝까지 붙드는 것이 사랑의 증거인가, 아니면 그 한계에 직면하여 놓아주는 것이 정당한 선택인가.

그러나 어떤 선택이 누구에게 ‘정당화’되어야 하는지를 묻기에 앞서, 우리는 그 책임이 놓인 ‘자리’의 불균형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이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책임이 특정한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집중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돌봄은 흔히 공동체의 가치로 이야기되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많이 헌신해 온 사람, 가장 쉽게 물러날 수 없는 사람, 혹은 가장 거절하지 못하는 이에게 그 부담이 고이기 쉽다. 그러므로 돌봄의 윤리는 선의의 유무를 따지기 전에, 책임의 배분이 공정한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사랑은 돌봄을 시작하게 하는 동력일 뿐, 불균형한 책임의 구조를 정당화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존재의 곁을 지키는 일은 매 순간 무엇이 최선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실제적인 윤리적 상황이다. 어떤 이는 고통을 당장 중단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지만, 다른 이는 그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라 믿는다. 한쪽에서 돌봄의 물리적 한계를 호소할 때, 다른 쪽은 치료를 멈추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부채감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 울타리 안에서도 각자의 입장과 감당할 수 있는 몫이 다르기에, 돌봄의 결론은 결코 매끄럽게 합의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에게 지고 있는 의무’라는 제목은 돌봄의 막다른 길목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내가 감당하는 무게가 정당한 나의 몫인지, 혹은 타인에게 지우는 부담이 설명 가능한 범위인지를 따져 묻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물러나려는 마음은 단순히 무책임한 회피가 아니라, 한계를 넘긴 과잉 책임에 대한 정당한 중단일 수 있다. 이 질문들 앞에서 도덕은 관념적인 미덕에 머물지 않고, 관계 속에서 무엇이 설명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끝까지 가려내는 분별의 과정이 된다.

우리가 서로에게 지고 있는 진짜 의무는 무한한 희생의 약속이라기보다 서로의 취약함과 한계를 외면하지 않는 정직함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끝까지 붙들려는 완벽함이 아니라 무엇이 나의 책임이며 무엇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인지를 정확히 응시하는 일이다. 돌봄은 대상을 온전히 구해내는 일이 아닌, 다 해줄 수 없다는 사실까지를 받아들이며 그 관계의 무게를 함께 견디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의무는 끝까지 버티는 것과 적절한 때에 멈추는 것 중 하나를 고르는 이분법적인 선택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사이의 불투명한 지점에서 각자의 몫과 한계를 끝까지 가려내며, 책임의 경계를 그려나가는 그 부단한 과정 자체가 이미 우리가 서로에게 지고 있는 의무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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