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피티 워모 109의 테마는 ‘모션(Motion)’. 옷은 멈춰 있을 때보다 몸을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일 때, 그 형태와 인상이 달라진다. 피티 워모는 이번 시즌 움직임 속에서 남성복을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설파했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저마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또 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겹쳐 입은 스웨터와 재킷, 손때 묻은 가죽, 보석을 촘촘히 수놓은 베스트까지. 개성 넘치는 이들이 활보하는 거리 위 런웨이는 몸의 움직임에 따라 각기 다른 표정을 드러내며 하나로 완성되었다.
피렌체에서 펼쳐진 세 개의 세계
올해 피티 워모 109에서는 신야코즈카(Shinyakozuka)가 스페셜 이벤트로 초청됐다. 쇼장에는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장갑을 낀 모델들의 머리와 어깨에는 눈이 쌓여 있고, 새하얀 공간에 푸른 색조가 더해져 또렷한 대비를 이뤘다. 작업복이 연상되는 룩은 여유로운 실루엣을 중심으로 구성했으며, 여기에 더해진 패턴은 ‘그림 같은 풍경(PicturesqueScenery)’이라는 브랜드의 컨셉트에 걸맞은 하나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이번 컬렉션은 시간과 노동의 흔적을 옷에 새기려는 신야코즈카의 시선을 오롯이 보여줬다. 스페셜 이벤트를 지나 흐름은 게스트 디자이너들의 쇼로 이어졌다.
절제된 디테일과 비율의 변주가 돋보였다.
첫 번째 게스트 디자이너로 무대에 오른 헤드 메이너(Hed Mayner). 차분한 분위기의 쇼장과 모델들의 여유로운 걸음걸이는 자연스럽게 옷의 형태와 구조에 시선이 가게 만들었다. 룩은 실루엣과 옷을 구성하는 방식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구조적인 형태감과 컷아웃 디테일이 도드라졌고, 스팽글 소재는 장식보다는 표면의 질감을 변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전통적 비율에서 벗어난 실루엣과 원단을 주름지게 잡아 만든 넉넉한 볼륨 역시 형태와 구조에 대한 헤드 메이너의 일관된 관심을 선명
하게 드러냈다.
두 번째 게스트 디자이너 소시 오츠키(SoshiOtsuki)의 쇼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의 레페토리오(식당)에서 진행됐다. 쇼에 앞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정돈된 정원과 벽면을 따라 이어진 그림들. 단정하고 고요한 쇼장은 새로운 컬렉션으로 채워졌다. 클래식한 수트를 바탕으로 형태와 비율을 변주한 룩이 주축을 이뤘다. 수트의 기본 구조 위에 길이와 질감이 서로 다른 레이어가 겹겹이 쌓였고, 그레이와 브라운을 중심으로 한 컬러는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안정감을 더했다. 정원의 공기와 그림이 만들어 낸 정적인 분위기에서 소시 오츠키의 옷은 과하게 튀지 않으면서도 또렷한 인상을 남겼다.
전시와 행렬로 드러난 움직임
피티 워모 109에서는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코드 코리아(Code Korea)’를 선보였다. 6개의 국내 브랜드를 통해 한국 디자이너들이 지금 어떤 언어로 패션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렸다. 두 시즌 연속 초청받은 아조바이아조(Ajobyajo)는 아웃사이더의 감성과 아시아 서브컬처를 바탕으로 브랜드가 지향하는 분위기를 펼쳐 보였다.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역시 두 시즌 연속 선정되며 핸드메이드 아플리케와 리버시블 구조를 통해 옷을 입는 다양한 방식을 제안했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와비사비 미학에서 영감 받아 시간의 흐름을 색으로 표현한 비엘알(BLR), 보는 시선에 따라 패션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이지앤아트(EGNARTS), 클래식한 요소를 재정립해 퓨처 클래식을 표방하는 석운윤(SEOKWOON YOON), ‘동물 학대 없는 패션’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지 가죽을 활용한 패션을 제안한 비건타이거 (VeganTiger)까지. 코드 코리아는 피렌체 현장에서 한국 브랜드들이 만들어가는 K패션이 가진 경쟁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요새인 포르테차 다 바소(Fortezza daBasso)에 자리 잡은 행사장 안에는 수트를 입은 남성들이 하나둘 모여 함께 걸었고, 그 장면은 이번 테마인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한 일본식 수트 퍼레이드 ‘세비로 산포(Sebiro Sanpo)’로 이어졌다. ‘수트(suit)’와 ‘걷다(walk)’라는 두 단어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수트를 전시하는 대신, 입고 걷는 행위를 통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패션에 초점을 맞췄다. 쇼 형식을 벗어나 수트를 입고 거리로 나선 참가자들의 행렬은 일상에서 남성복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전시 형식으로 구성한 예술 프로젝트 ‘장인의 메아리(Echoes ofCraft)’에서는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했다. 캐시미어 원사에서 시작해 원단이 되는 과정을 다뤘는데, 전시된 옷을 보는 것만으로도 표면의 질감과 재질이 또렷이 전해졌다. 피렌체의 장인정신과 고급스러운 소재를 대변하는 세 점의 셰퍼드 망토(ShepherdCloak)를 따라가다 보니 순간의 화려함보다 지속 가능성을 향한 콘사이니 (Consinee)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