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취업박람회가 열린 일부 대학교 앞에 '대학은 집단학살에 가담하지 말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불법점령 등 여러 전쟁범죄에 연루된 기업들이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은 이들 기업에 대한 보이콧을 촉하며 '우리는 집단학살에 가담하기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이 보이콧을 주장했던 이유를 3회에 걸쳐 연속 기고한다. 편집자
집단학살 연루기업과 공모하는 한국 대학
매일같이 들려오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소식이 뜸해졌다. 학살이 멈췄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스라엘 점령군은 가자지구 국경을 봉쇄하고 공습을 이어 나가고 있으며,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생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고 그것 참 안 된 일이네요 잘 해결되길 바라요' 하면서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을 수 있다. 나와는 마치 아무 상관 없는 일인 양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이역만리 팔레스타인 땅의 비극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상관이 있다.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연루된 기업들이 대학교 안에서 취업박람회를 열기 때문이다. 취업박람회에 참여한 몇 한국 기업들은 이스라엘과 연이 깊다. HD현대 굴착기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파괴하고, LIG넥스원의 군용 로봇은 수출돼 집단학살에 사용된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스라엘 무기업체와 MOU를 맺고 집단학살에 쓰이는 무기 공급에 일조한다. 집단학살 연루 기업의 대학교 취업박람회 참여는 취업시장을 앞에 서 있는 학생들을 집단학살에 연루시킨다. 우리는 집단학살에 가담하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연루되는 것을 끊어내고, 집단학살 연루 기업이 대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학생들이 모였다.
집단학살에 가담하기 위해 공부하지 않았다
지난 2025년 9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의 제안으로 서강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에서 대학교 취업박람회에서 집단학살 연루기업 퇴출을 요구하는 활동이 진행됐다. 올해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학술보이콧 캠페인팀 '잔물결'의 제안으로 여러 대학생 단체가 모였다.
1월에 진행된 첫 회의에서 14개 단체가 모였고 그 수는 계속 늘어났다. 회의를 통해 서로 다른 대학의 상황을 이해하고 집단학살 연루 기업 취업박람회 저항행동(이하 공동행동)의 요구를 만들어갔다. 3월 3일 공동행동으로 함께하는 대학생 단체 42개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의 요구는 명확했다. "대학은 사회적 책무를 다해 집단학살 연루 기업 초청을 철회하라. 기업은 집단학살 공모를 중단하라."
공동행동의 요구를 각 대학로 가져가 취업박람회가 열리기 전 면담을 하기도 한 대학도 있었다. 그러나 이에 응한 대학은 없었다. 집단학살 연루 기업들은 취업박람회에서 부스를 그대로 운영하며 아무런 방해 없이 대학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그들의 퇴출을 요구하는 학생들은 움직였다. 3월 첫째 주에는 고려대와 카이스트,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단체들이 행동했고, 둘째 주에는 이화여대와 중앙대 단체들이 행동했다.
각 대학에서 단체들은 대학 상황에 맞춰 집단학살 연루 기업의 문제를 알리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성명을 냈다. 취업박람회 기간에 대학 안에 대자보와 현수막을 게시했다. 취업박람회 장소 인근에서 학우들에게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리고 집단학살 연루 기업들을 퇴출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유인물을 배포하고 피케팅을 하고 오픈마이크를 하기도 했다. 취업박람회에 집단학살 연루 기업이 참여하지 않거나 취업박람회를 아직 진행되지 않은 대학들도 함께했다. 계원예술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인천대, 경희대 등 집단학살 연루기업을 규탄하는 대자보를 게시하며 힘을 모았다.
3월 5일 공동행동 참여 단체들이 연세대 앞에서 '대학 채용박람회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연루 기업 보이콧'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팔레스타인인 당사자이며 한국에서 석사과정에 있는 타렉 함단은 이스라엘이 병원과 학교를 파괴하는 "전쟁범죄"에 사용된 무기와 장비의 기업들을 기억한다며 공동행동을 지지했다.
대학은 집단학살 공모의 공간이 아니다
대학 본부는 저항행동을 감시하는 한편 행동 장소를 제한하는 등 사사건건 간섭하며 압박했다. 중앙대에서는 집회 신고를 요구하고 업무방해를 운운하며 학생들을 위협했다. 이화여대에서는 본부 직원이 피케팅을 진행한 인원을 감시하는가 하면 저항행동을 알리기 위해 부착한 현수막과 공동성명문을 철거해 버리기도 했다. 면담에 응한 대학마다 반응은 상이했으나, 공통으로 HD현대, LIG넥스원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집단학살 연루 기업들은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기업'이기에 취업박람회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기업들은 임금이 높고 복지가 좋은, 흔히 '워라밸이 좋은' 기업들로 꼽힌다.
방산 산업 자체에 대한 비판을 뒤로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집단학살을 저지르고 있다. 총기 난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총알을 쥐여주는 일은 당연히 범죄이다. 집단학살 연루 기업들은 집단학살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에게 무기와 장비를 팔아놓고, 자신은 팔았을 뿐이라 말한다. 그들이 판매한 무기와 장비가 누구를 향하고, 누구를 죽이겠는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곧 집단학살을 조력하는 것이다.
워라밸만 좋으면 되는 일이 아니다. 대학이 취업박람회에 집단학살 연루 기업을 초청하는 것은 곧 학생들이 집단학살 공범이 되도록 방조하고 장려하는 것이다. 대학은 취업 중개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가진 공적 공간이다. 대학이 할 일은 집단학살 연루 기업에 금칠해 취업박람회에 들여보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그 실체에 대해 직시하게 하는 일이다.
학기가 시작해 가장 바쁠 시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학생 단체들이 이 공동행동에 함께했다. 취업박람회를 통한 대학과 학살연루 기업의 공조를 학생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대학은 집단학살 연루 기업을 취업박람회로 부른 것뿐만 아니다. 산학협력 형태로 이스라엘 대학이나 집단학살 연루 기업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학살 기술을 제공하고 학술장에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우리의 공부와 노동은 집단학살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학은 집단학살 공모가 아닌 학문과 연대의 장이 돼야 한다. 취업박람회에서 학살 연루 기업을 쫓아내는 것은 시작일 뿐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행동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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