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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인클래식] 격정대신 잔잔함 스스로 감정을 채워 넣게 만드는 음악

뉴스컬처 2026-04-01 12:14: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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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가브리엘 위르뱅 포레 '시실리안느'
가브리엘 위르뱅 포레 '시실리안느'

프랑스 음악의 결을 이야기할 때, 화려한 인상주의의 빛 이전에 은은하게 번지는 한 줄기의 서정이 있다. 그 중심에 가브리엘 포레가 서 있다. 그는 혁신을 외치기보다 조용히 음을 다듬으며, 감정의 가장 섬세한 결을 음악으로 길어 올린 작곡가였다.

1845년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포레는 파리의 니데르메예르 음악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일찍부터 종교음악과 고전 양식을 체득했다. 그의 음악에는 늘 절제된 경건함과 인간적인 온기가 공존한다.

젊은 시절, 그는 오르가니스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틈틈이 작곡을 했다. 화려한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오히려 그에게 음악은 ‘보여주기’가 아니라 ‘버텨내기’에 가까웠다.

전해지는 일화 하나. 파리의 한 살롱에서 연주를 마친 뒤, 누군가 그의 음악이 “너무 조용하다”고 평하자 포레는 담담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용한 음악도 충분히 멀리 간다.”

그의 음악 세계를 압축하는 문장이다.

포레의 대표적인 소품 가운데 하나인 시실리안느는 원래 연극 음악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다.

곡은 일정한 리듬 위에 부드러운 선율이 얹히는 구조다. 마치 바닷가에서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잔물결처럼, 감정이 과장되지 않은 채 흐른다.

여기서 ‘시실리안느’라는 이름은 17~18세기 바로크 시대의 춤곡 형식에서 유래한다. 느리고 흔들리는 리듬, 그리고 목가적인 정서. 포레는 이 오래된 형식에 자신만의 색을 입혔다.

특히 첼로의 음색은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아 있다. 포레는 이를 통해 말하지 않는 감정을 노래하게 만든다. 피아노는 그 뒤에서 과장 없이 호흡을 맞춘다. 둘은 경쟁하지 않는다.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그저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시실리안느’에 얽힌 작은 창작 일화도 전해진다. 연극 음악 작업을 맡았던 포레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곡을 완성해야 했다. 그는 평소 산책을 즐겼는데, 어느 날 센 강변을 걷다가 떠오른 선율을 급히 수첩에 적었다고 한다.

그 선율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듣는 ‘시실리안느’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곡이 ‘의도된 명곡’이 아니라 ‘흘러나온 음악’에 가깝다는 것이다. 포레 특유의 자연스러움은 여기서 비롯된다. 계산된 극적 효과 대신, 삶의 리듬에서 건져 올린 멜로디.

포레의 인생 후반은 또 다른 의미에서 특별하다. 그는 점차 청력을 잃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의 소리가 사라질수록 그의 내면 음악은 더 깊어졌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더욱 절제되고, 더욱 투명해진다. 감정은 격해지지 않지만 오히려 더 멀리 스며든다.

‘시실리안느’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격정 대신 잔잔함, 드라마 대신 여백.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감정을 채워 넣게 만드는 음악이다.

오늘날 수많은 연주자들이 이 곡을 연주한다. 빠르게 몰아치는 해석도, 느리게 늘어뜨린 해석도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곡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지 않는 힘’이다.

포레의 음악은 귀를 사로잡기보다 마음을 붙잡는다. 그리고 한 번 스며든 선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화려함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그의 음악은 더 또렷하게 들린다. 조용하지만 깊게, 그리고 오래.

그것이 바로 가브리엘 포레의 ‘시실리안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다.

뉴스컬처 최병일 skyc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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