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21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반등한 것이다.
유럽연합 통계국은 3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HICP) 기준 연간 인플레이션이 2.5%를 기록했다고 31일 발표했다. 이는 2월의 1.9%에서 크게 상승한 수치로, 유럽중앙은행(ECB)의 물가 목표 수준을 다시 상회한 것이다.
이번 물가 상승의 핵심 요인은 단연 에너지 가격이다. 2월 말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격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급격히 확대됐다. 북해산 브렌트유 5월물 가격은 전쟁 직전 배럴당 73달러 수준에서 112달러를 돌파하며 약 53% 폭등했다.
이에 따라 유로존 에너지 물가는 2월 연간 기준 -3.1%에서 3월 +4.9%로 급반전했다. 월간 기준으로도 에너지 가격은 6.8% 상승하며 전체 물가를 강하게 끌어올렸다. 반면 식품·알코올·담배 부문은 0.1% 상승에 그치며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3월 한 달간 전체 소비자물가는 1.2% 상승해, 월간 상승폭 역시 이례적으로 컸다. 주요국별로도 물가 상승세가 뚜렷했다. 독일은 월간 1.2% 상승으로 연간 인플레이션이 2.0%에서 2.8%로 확대됐고, 프랑스는 1.1% 상승하며 1.1%에서 1.9%로 올랐다. 이탈리아는 월간 1.6% 상승에도 연간 물가는 1.5%로 유지됐으며, 스페인과 그리스 역시 각각 1.5%, 2.0%의 월간 상승을 기록했다.
유로존 인플레이션은 올해 들어 1월 1.7%, 2월 1.9%로 안정세를 보였으나, 이번 에너지 쇼크로 다시 상승 흐름으로 전환됐다. 지난해 3월 2.2%였던 점을 감안하면, 물가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는 평가다.
문제는 통화정책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6월 예치금리를 2.0%까지 인하한 이후, 올해 3월 중순까지 여섯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하며 완화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는 물가가 목표 수준 근처에서 안정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물가 급등으로 ECB는 다시 정책 딜레마에 직면했다.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인플레이션을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향후 유가 흐름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ECB의 정책 방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추가 상승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확대될 수 있으며, 반대로 유가가 안정될 경우 일시적 충격에 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유로존 경제는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라는 외부 변수에 다시 한번 크게 흔들리고 있다. ECB의 다음 선택이 주목된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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