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코스테의 L.12.12 폴로셔츠 아카이브 피스, 리차드 밀 워치를 착용한 라파엘 나달, 아디다스의 스탠스미스 스니커즈.
TENNIS
만화 〈테니스의 왕자〉를 본 적이 있는가? 장편 만화의 테마가 될 만큼 테니스는 대중성과 비주얼을 동시에 갖춘 종목이다. 코트 위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세련된 경기복은 패션과 자연스레 맞닿아 있다. 이 관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프랑스의 테니스 선수 르네 라코스테다. 1920년대 테니스 세계 챔피언으로 활약했던 그는 코트 위에서 집요한 플레이로 유명했고, 이 때문에 ‘악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의류 브랜드 라코스테를 설립하면서 채택한 악어 로고는 오늘날까지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선수들은 긴소매 셔츠를 입고 경기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라코스테는 이러한 복장이 움직임을 방해한다고 느꼈다. 그는 보다 활동적인 복장을 고민했고, 폴로 경기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었다. 소매 길이를 과감히 줄이고, 통기성과 착용감을 높이기 위해 피케 소재를 니트 원단으로 개량했다. 더불어 큰 동작에도 셔츠가 바지 밖으로 빠지지 않도록 뒤를 더 길게 만든 ‘테니스 테일’ 디테일을 고안했다. 이러한 기능적 개선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 바로 라코스테의 L.12.12 폴로셔츠다. 처음에는 선수들을 위해 개발했지만 곧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아디다스의 대표 스니커즈인 스탠스미스는 1960~1970년대를 풍미한 미국 테니스 선수 스탠리 로저 스미스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온리 화이트’라는 엄격한 규칙이 테니스 리그에 존재하던 시절, 기존의 화이트 캔버스 스니커즈를 화이트 레더로 개량한 것이 지금의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자리매김한 것. 테니스와 워치업계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리차드 밀은 2010년부터 라파엘 나달과 협업을 이어왔다. 당시 나달은 시계를 찬 채로 경기하는 것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었다고. 하지만 리차드 밀은 풀 파워 스윙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내구성과 경기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초경량 구조를 갖춘 모델을 개발해 우려를 해결했다. 그 결과 나달은 실제 경기에서 시계를 착용한 채 코트에 등장했고, 이는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워치라는 것을 각인한 사례로 남았다.
스위스 요트팀 알링기를 후원하는 튜더, 파네라이의 루나 로사 프라다 피렐리팀 협업 컬렉션, 루미노르 루나 로사 워치, 프라다의 아메리카스 컵 스니커즈.
SAILING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드라마 속 재벌 2세 캐릭터가 요트를 몰며 남긴 이 대사는 ‘상류층 스포츠’ 세일링이 지닌 상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정점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스포츠 이벤트인 아메리카스 컵이 자리한다. 1851년에 시작한 이 대회는 단순한 경기를 넘어 기술력·자본·브랜드 상징성이 결합된 무대로,첨단 장비와 연구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 브랜드들의 경쟁적 참여를 이끌어왔다. 루이 비통은 예선전인 ‘루이 비통 아메리카스 컵’을 운영하며 아메리카스 컵 공식 후원사로 긴 시간 활약해오고 있다. 요트와의 관계를 가장 적극적으로 구축한 브랜드는 단연 프라다다. 프라다는 아메리카스 컵에 참가하는 요트팀 루나 로사 프라다 피렐리를 직접 창단 및 운영하고 있다. ‘아메리카스 컵 스니커즈’ 역시 실제 선수들을 위해 설계된 기능성 신발이다. 메시 소재를 사용해 물이 빠르게 배출되도록 했고, 통기성과 인체 공학적 구조를 강화했다. 이후 파네라이 역시 루나 로사 프라다 피렐리팀을 공식 후원하며 협업 시계를 선보였다.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 오프쇼어는 ‘오프쇼어’ 레이싱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반영한 모델로, 더욱 스포티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2003년 스위스 요트팀 알링기를 후원하며 동일 컬렉션으로 협업 모델을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알링기의 공식 단독 스폰서는 튜더다. 2024년 아메리카스 컵 당시 해군 잠수부 장비에서 영감을 얻은 펠라고스 FXD를 협업 컬렉션으로 공개하는 등 해양 스포츠와의 연관성을 강화하고 있다.
2025년 태그호이어가 타임키퍼로 나선 F1 마이애미 그랑프리 전경, 푸마의 스피드캣 스니커즈, 라스베이거스 그랑프리를 기념해 출시한 태그호이어의 모나코 크로노그래프.
RACING
인간은 늘 속도 경쟁에 열광했다. 가장 원초적 형태의 달리기, 말을 이용한 경마 그리고 자동차 등장 이후 본격적인 모터 레이싱까지. 더 빠르고 극적인 경주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자연스럽게 기술 발전을 이끌었고, 그 정점에는 세계 최고 모터스포츠 포뮬러 1(이하 ‘F1’)이 자리한다. F1은 단순한 자동차 경주가 아니라 각 브랜드의 기술력이 집약되는 무대다. 공기역학, 엔진 설계, 소재 공학까지 첨단 기술이 총동원되는 만큼 이곳에서의 경쟁은 곧 브랜드의 기술적 위상을 상징한다. 자동차와 시계는 정밀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태그호이어다. 태그호이어는 과거 맡았던 F1 공식 타임키핑 파트너에 복귀하며 모터 레이싱과의 유대를 강화했다. 브랜드의 대표 컬렉션인 태그호이어 까레라 역시 멕시코의 모터 레이싱, 카레라 파나메리카나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또 다른 상징적인 모델은 태그호이어 모나코다. 이 시계는 가장 오래되고 상징적인 레이스 중 하나인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특히 1971년 영화 〈르망〉에서 배우이자 실제 레이서였던 스티브 매퀸이 이 시계를 착용한 채 등장하면서 레이싱 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현재 태그호이어는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과 파트너십을 이어가며 모터스포츠와의 연결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레이싱 문화는 시계뿐 아니라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푸마의 스피드캣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1998년 F1 레이서들을 위해 개발한 방화 레이싱 슈즈에서 시작됐다. 최초의 스피드캣은 좁은 운전석에서 페달 조작의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해 앞코를 날렵하게 설계했고, 화재 사고에 대비해 방화 소재를 적용했다. 푸마가 페라리팀을 후원하던 시절, 전설적인 F1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가 레드 스피드캣을 착용한 모습이 경기 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노출됐다. 이를 계기로 스피드캣은 레이싱 슈즈를 넘어 대중적인 스니커즈로 자리 잡았다.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 트리뷰트 모노페이스, 폴로 랄프 로렌의 폴로셔츠 아카이브 피스.
POLO
선수가 말에 올라타 나무망치 ‘맬릿’으로 공을 쳐 상대의 골대에 넣는 팀플레이 기마 스포츠, 폴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스포츠지만 서구권에서는 리그가 있을 만큼 탄탄한 마니아층을 구축하고 있다. 과거 왕실의 전투 훈련을 기반으로 발전해 ‘왕들의 스포츠’로, 다수의 말을 관리할 막대한 재력이 필요해 ‘귀족 스포츠’로도 불린다. 우아한 사교 현장처럼 느껴지지만 말 위에서 행하는 몸싸움, 속도감 등 경기 내용은 상당히 격렬한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계 유리가 자주 파손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케이스를 뒤집을 수 있는 구조로 만든 것이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 모델의 시초다. 브룩스 브라더스의 버튼다운 셔츠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당시 선수들이 달릴 때 셔츠 깃이 바람에 날려 얼굴을 치자 깃 끝에 구멍을 내 단추로 고정했고, 여기에서 착안해 버튼다운 셔츠가 등장했다. 브랜드 이름부터 폴로 경기와 밀접한 연관성을 드러내는 폴로 랄프 로렌의 폴로셔츠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상류층이 향유하던 폴로 경기에서 영감을 얻었고, 경기 중 편하게 입던 셔츠를 모티프로 삼았다. 당시 흰색이 기본이던 셔츠에 24가지의 색상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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