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블랙 스완(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상황)’이 되어 한국 금융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금리·환율·물가가 동시에 치솟자 국내 경제의 근간마저 흔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을 넘어섰고, 국고채 금리는 ‘탠트럼(발작)’ 수준의 급등세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금리 인하를 기대하며 관망하던 시중 자금이 달러나 금 같은 전통적 안전자산마저 이탈해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 대기성 자금으로 숨어드는 ‘극도의 불확실성’ 국면에 진입했다. 금융권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우려한다.
◇채권시장부터 반응…국고채 전 구간 금리 ‘발작’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채권시장이다.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27일 3.18%에서 3월 30일 3.54%로 36bp(1bp=0.01%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국고채 5년물·10년물 금리도 38bp 상승했다.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르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시장금리가 먼저 움직였다. 직전까지 남아 있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되면서 채권시장 상승 폭이 확대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전까지만 해도 채권시장에는 기준금리 인하와 동결, 상승 기대가 혼재돼 있었으나 중동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동결 장기화와 인상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고 설명했다.
◇불확실성 확대에 안전자산 이탈…초단기 대기처로 이동
원달러 환율 상승세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1466.5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30일 1517.8원으로 약 50원 상승했다. 31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530원을 넘어섰다. 금리 상승과 원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 구조상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기업의 원가 부담을 키운다.
여기에 금리 상승까지 더해지면서 기업의 이자 비용과 원재료 비용이 동시에 증가한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금리 상승은 기업에 이중 압박으로 작용하며 금융권 입장에서는 대출 부실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은 시중 자금 흐름도 바꿨다. 통상 금리 상승과 원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면 시중 자금은 달러예금이나 금 등 안전자산으로 몰린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흐름과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3일 기준 5대 시중은행 달러예금 잔액은 613억8300만달러로 지난달 27일 대비 44억6100만달러 줄었다. 안전자산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단기 대기처로 이동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231조9740억원이었던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은 지난 23일 247조725억원으로 약 한 달 사이 16조원 이상 증가했다.
◇고정형 주담대 금리 7% 진입…하방 막히고 상방 뚫려
채권, 환율, 시중 자금 흐름의 변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서민 실물경제에도 서서히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인 은행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대출금리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주담대 금리 지표가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지난달 27일 3.721%에서 지난 30일 4.119%로 약 40bp 상승했다.
은행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은행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지난 2022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금리 상단이 7%대를 넘겼다. 지난 27일 기준 5대 시중은행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연 4.410~7.010%를 기록했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대출금리는 하락하기 어려운 반면 상승 속도는 빠르게 반영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 기조로 금리 인하 요인을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금 조달 비용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대출금리 하단은 막혔고 상단은 뚫려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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