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따뜻해지는 3월 말부터 4월 사이, 회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는 생선이 있다.
숭어 회 자료사진 / SUNGMOON HAN-shutterstock.com
흔히 숭어라고 하면 가격이 저렴한 ‘막회용’이라거나 흙냄새가 난다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하지만 지금 시기의 숭어는 “돔보다 맛있는 가성비 회”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맛과 식감을 자랑한다. 4월 제철을 맞은 숭어의 진면목과 오해를 바로잡는 법, 그리고 현명하게 즐기는 방법을 정리했다.
많은 사람이 숭어를 저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경험한 ‘흙냄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장에서 만나는 숭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며, 눈동자 색깔 하나만으로도 맛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
먼저 눈이 노란색인 '가숭어'는 주로 겨울인 12월에서 2월 사이가 제철이다. 지역에 따라 '밀치'나 '참숭어'로 불리는 이 어종은 겨울철에는 지방이 풍부해 고소하지만, 봄이 되어 산란을 마치면 살이 급격히 빠지고 특유의 흙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만약 3월 이후 서해안 등지에서 잡히는 가숭어를 먹고 실망했다면 바로 이런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다.
반면 지금 4월에 반드시 찾아야 할 주인공은 눈이 검은색인 '표준명 숭어'다. 보리가 익을 무렵 가장 맛있다고 하여 '보리숭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숭어는 가숭어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겨울 동안 먼바다에서 월동하며 살을 찌운 뒤, 봄철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들어온다. 이때가 살이 가장 탱글탱글하고 단맛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이다. 실제로 눈을 가리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면, 기름진 풍미와 아삭한 식감 때문에 겨울철 끝물의 방어와 착각할 정도로 훌륭한 맛을 낸다.
숭어 자료사진 / SUNGMOON HAN-shutterstock.com
숭어의 가장 큰 매력은 압도적인 가성비와 높은 수율에 있다. 최근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평범한 횟감 가격도 부담스러운 수준이 되었지만, 숭어는 여전히 서민적인 가격대를 유지한다. 산지 경매가는 킬로그램당 7천 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하며, 일반 수산시장에서도 2만 원에서 2만 5천 원 내외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숭어는 대가리와 내장을 제외하고 실제 먹을 수 있는 살의 양을 뜻하는 '수율'이 50%를 상회한다. 광어나 다른 생선에 비해 버리는 부위가 적어 같은 무게를 주문해도 훨씬 양이 많다.
특히 전남 진도나 완도 인근에서 잡히는 숭어가 유명한 이유는 거친 환경 덕분이다. 진도 울돌목처럼 물살이 거센 곳을 거슬러 올라오는 숭어는 활동량이 많아 근육이 매우 발달해 있다. 이를 회로 썰어내면 씹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독특한 저항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어종인 돌돔에서나 느낄 수 있는 단단한 식감과 닮아 있다.
또한 서식 환경에 따른 맛의 차이도 뚜렷하다. 뻘이 많은 내만권에서 개흙을 먹고 자란 숭어는 자칫 냄새가 날 수 있지만, 수심이 깊고 맑은 먼바다 암반 지대에서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 숭어는 지방질이 깨끗하고 살의 풍미가 깊다. 따라서 구매 시에는 반드시 산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전남 완도, 진도, 거제, 통영 등 물살이 세고 깨끗한 남해안권 산지를 추천하며, 제주도나 서해 북단 지역의 숭어는 조류나 환경 차이로 인해 4월 기준으로는 맛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숭어 자료사진 / mnimage-shutterstock.com
손질 과정에서도 숭어만의 특별한 재미가 있다. 숭어 내장에는 닭똥집과 흡사한 '숭어 밤(모래집)'이라는 부위가 있다. 개흙을 걸러내기 위해 발달한 기관인데, 이를 깨끗이 손질해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아삭하고 고소한 별미가 된다. 다만 쓸개가 터지면 살 전체에 지독한 쓴맛이 배어 횟감을 망칠 수 있으므로 자가 손질 시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맛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첫 점은 간장과 고추냉이만 살짝 곁들여 숭어 본연의 단맛과 지방의 고소함을 느껴보는 것이 좋다. 숭어는 다른 생선에 비해 초장과의 궁합도 매우 뛰어나지만, 기름기가 충분히 오른 보리숭어라면 쌈 채소보다는 회 자체의 식감을 즐기는 편이 낫다.
4월은 먹거리가 넘쳐나는 계절이지만, 지갑 걱정 없이 최고의 만족감을 얻고 싶다면 보리숭어가 정답이다. "숭어는 싸구려"라는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제대로 된 산지의 숭어를 만난다면, 매년 봄 보리가 익어갈 무렵이면 이 붉은 살 생선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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