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정 칼럼] Sentimental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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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묘정 칼럼] Sentimental Value

문화매거진 2026-03-31 12:34:55 신고

[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나는 가끔 영화가 단순히 영상매체가 아니라 생명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영화는 인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나 사람이나 인연이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은 어떤 시기에 나의 무엇을 어떻게 비집고 들어오는지에 따라서 그냥 스쳐 가기도 때로는 강렬하게 인이 박히기도 한다.

‘Sentimental Value(이하 센티멘탈 밸류)’가 그런 영화였다. 나의 개인사와 너무 닮아 있어서 작품을 보는 내내 감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 영화가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방식이 참 독특했다. 나는 그저 모래사장에 서 있을 뿐인데, 가끔씩 작은 파도가 와서 내 발을 어루만지고 가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그렇게 내 감정을 건드렸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이 가진 고민과 인물들 간의 갈등이 수 겹의 레이어로 쌓여 각자가 자신이 대면해야 할 진짜 감정을 마주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사실 이 영화가 내 감정을 터트려서 시원하게 해결해 주기를 바랐지만 사실 그렇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조용히 나를 몇 번이고 스쳐 갔던 그 파도의 여운이 그날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남아있다. 수영장을 다녀오고 나면 다리에 여전히 물의 움직임이 남아있듯이 말이다.

‘센티멘탈 밸류’는 ‘정서적 가치’라는 뜻이다.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엄마의 장례식에 나타나서 딸에게 자신이 쓴 영화를 같이 만들자는 제안을 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결국은 가족영화고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상처를 극복하면서 화해하는 내용이다. 세상에 없던 주제의 영화가 아닌데, 그 화해에 도달하는 과정이 굉장히 섬세하면서 치밀하다.

초반에는 아버지 역할로 나오는 구스타브가 너무 짜증 났다. 내가 노라에게 감정이입을 했기보다는 구스타브가 우리 아버지를 닮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북유럽이라는 멀고도 먼 나라의 남자 감독이 어떻게 이렇게 한국의 딸들의 마음을 잘 파고드는지 싶었다. 요아킴의 아버지도 영화감독이라고 들었는데, 자신의 개인사를 정면으로 솔직하게 맞서면 지역과 시간을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전달이 되나 보다. 

▲ 영화 스틸컷
▲ 영화 스틸컷


극 중 구스타브가 노라에게 이런 말을 한다.

“화가 나 있는 사람은 사랑받기 어려워.”

화가 나게 만든 사람이 오랜만에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이런 소리나 하고 있으니, 어떤 딸이 이런 아버지랑 대화가 하고 싶겠는가.

나는 노라의 내면 안에 분노로 가득 찬 그 마음을 감히 알 것 같다. 노라가 화가 난 상대는 어쩌면 자신을 떠나간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에게 향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은 떠난 사람을 원망하면서 화로 가득 찰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남겨진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

▲ 영화 스틸컷
▲ 영화 스틸컷


그래서 떠나간 사람이 설명해 주지 못 한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기 때문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파고들면서 상처를 내기 때문에 화에 사로잡혀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계속 스스로를 바쁘게 움직이는 것 말고는 없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멈추는 것. 어떻게 보면 회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비겁하게 보일 수 있는 그 회피가 누군가에게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노라는 누군가와 일정 이상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두려워 한다. ‘너도 내 진짜를 알고 나면 나를 떠나게 될 거야’하는 마음의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스타브는 딸에게 말한다. 너는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너에게 필요한 것은 집이라는 이야기를 서툰 말과 행동 그리고 자신의 영화로 표현한다.

나는 이 영화가 집을 떠났던 아빠가 딸에게 집(HOME)을 찾아 주기 위해서 돌아온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딸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했지만, 내가 가정을 이뤘던 것처럼 너도 누군가와 함께 너만의 집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늦기 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 영화 스틸컷
▲ 영화 스틸컷


영화를 만든 감독 요아킴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는 식의 화해는 믿지 않아요. 삶은 그렇지 않죠. 화해란, 모두가 동의하거나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충분히 협상하고, “우리는 끝내 합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너와 함께 평화를 찾을 수는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갈망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평생 마음에 큰 딱지처럼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음 속 분노가 있어도 또 다른 한 구석에는 누군가를 껴안을 수 있는 따뜻함이 남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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